REVIEW 41

소년이 온다

한강 - 소년이 온다 이 책을 손에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알록달록한 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과 달리, 그 내용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에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에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에서 저는 이미 광주의 조각들을 보았습니다. 아니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광주사태, 광주항쟁, 광주 민주화 운동이 정작 언제 벌어진 일인지는 몰랐습니다. 5월 18일 하루에 그 모든 일이 다 일어난 걸까? 그 잔인하고 끔찍한 일들이 조각 조각들이 그 날 하루에 벌어진 일이었나? 손가락만 까딱하면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요즘에도, 억지로라도 그 검색어를 입력해 보지는 않았..

REVIEW/BOOK 2024.03.21

십자가 위의 예수

십자가 위의 예수 스탠리 하우어워스 저, 신우철 역 (새물결플러스, 2009) 。 많은 교회들이 고난주간, 특히 성(聖)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일곱 말씀으로 특별한 예배를 준비하거나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래서인지 ‘가상칠언(架上七言)’을 다루는 대부분의 글들은 ‘목양의 목적’으로 쓰였거나, 혹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Christ)와 같이 청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내용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 듀크대학의 교수이자 ‘한나의 아이’ 저자로도 국내에 잘 알려진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십자가 위의 예수’라는 가상칠언에 대한 묵상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에도 큰 기대(?)없이 서론을 훌훌 넘기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한 문장에서 눈이 딱 멈추..

REVIEW/BOOK 2024.02.27

찐 맛집 같은 교회

“작은 교회의 설교와 예배” - 윌리엄 윌리몬, 로버트 윌슨 공저, 전의우 옮김, 비아토르 오랫동안 방황을 하더니 최근에서야 신앙을 갖게 된 후배를 반갑게 만났다. 흥미롭게도 후배에겐 코로나 팬데믹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기독교 신앙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소통의 창구가 없었던 후배는, 여러 교회의 온라인 예배, 웨비나(webinar) 등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정돈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 어느 교회에 출석하고 있어?” 함께 있던 다른 지인이 물었다. “그냥 작은 교회예요.” “그냥 작은 교회가 어디 있어? 교회 이름이 뭔데?” “말해도 모르실 거예요. 동네에 있는 그냥 작은 교회예요.” 여의도순복음교회, 명성교회,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 선한목..

REVIEW/BOOK 2024.01.18

한국교회 트렌드 2024

지난 해 출간되었던 ‘한국 교회 트렌드 2023’은 ‘플로팅 크리스천’, ‘SBNR’이라는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많은 교회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이 책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의 교회 사역들을 기획하고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와 ‘트렌드’를 한 문장에서 함께 읽는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사회 문화적인 변화와 교회가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고 그 변화와 그 흐름을 잘 읽어내는 것 역시 목회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뉴노멀 시대의 친절한 가이드 북 하지만 1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교회 내에서 트렌드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고 또 다수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 트렌드 2023"이 한국 교회에 큰..

REVIEW/BOOK 2024.01.08

혐오와 증오의 사회

혐오(disgust)는 불편함이다. 나와 다른 타자로부터 느끼는 불일치에 대한 불편함일 수도 있고, 청결하지 못한 대상에 대한 찌푸림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이런 '혐오의 감정'은 있다. 그것이 바퀴벌레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불균형한 건출물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일 수도 있다. 이것은 잘못인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도덕적 감수성의 문제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이러한 '혐오'까지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이러한 '혐오'는 지극히 개인의 감정에 불과했다. 혐오가 집단화되는 것이 증오(hatred)이다. 데카르트의 영리한 지적처럼, 증오는 어떤 특정한 집단 내의 혐오 대상이 완전히 제거될..

REVIEW/BOOK 2023.08.21

병맛을 원해? 그래 어디 끝까지 달려보자!

영화관에서 팝콘 좀 먹어봤다는 사람들이 2022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았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제목만 들어서는 도무지 무슨 영화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고,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뭔가 굉장하고 동시에 산만한 영화"라는 식의 신통찮은 답변만 돌아오던 영화. 그래서 포스터 속 양자경의 멋진 포즈만 보고선, "아, 새로나온 홍콩 영화구나"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가 95회 아카데미에서 무려 7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덕분에 대작을 미처 몰라 본 범인들의 참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수상내역도 놀랍다. 작품상, 감독상(다니엘스, 감독이 2명의 다니엘이라서), 여우주연상(양자경), 여우조연상(제이미 리 커티스), 남우조연상(키호 이 콴), 각본상(다니..

REVIEW/MOVIE 2023.03.17

이 시대의 언론을 반추하다, 스포트라이트

-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미국 보스턴의 유력 언론지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 취재팀, 스포트라이트가 2001년 보도하여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던 미국 내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 성범죄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보스턴 클로브의 새로운 편집장으로 부임한 마티 배런(Marty Baron, 리브 슈라이버 扮)은 '존 게오건'(John Joseph Geoghan)이란 신부가 보스턴 내 여러 교구를 옮겨다니며 아동 성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정황이 있었는데도, 피해자와의 합의했다는 이유로 서둘러 사건이 종결되고 이를 보도하는 기사도 단신에 불과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당시 가톨릭 교회, 특히 보스턴 교구를 맡고 있던 '버나드 로(Bernard Francis L..

REVIEW/MOVIE 2023.02.17

이 꼴이 날 줄 알았던 영화, 교섭

영국의 극작가인 버나드 쇼는 이런 묘비명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사실 버나드 쇼는 화장을 하고 그 재를 뿌렸기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는 묘비 같은 건 없다. 늘 그랬듯이 그의 재기발랄한 입담이 사후까지 전해졌던 게 아닐까?). 언젠가, 내가 이 꼴이 날 줄 알았어!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영화 '교섭'을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100억 원이 넘게 투자된 영화. 요르단 로케이션으로 메마르고 광활한 광야를 담아낸 영화. 황정민과 현빈이라는 핫한 두 배우의 투샷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도대체 왜 '이 꼴'이 나버린 걸까? 2007년 샘물교회 단기선교팀 피랍 사건 잘 알..

REVIEW/MOVIE 2023.02.09

베네딕토 16세의 선종, 그리고 영화 '두 교황'

2022년의 마지막 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종했습니다. 2013년 2월, 그는 생존한 교황으로서 교황직에서 사임한 가톨릭 역사 상 두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교황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9년 동안 자연스럽게(?)두 명의 교황이 가톨릭에 존재했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업무는 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맡고 있었지만, 생존한 전임 교황의 권위는 후임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5일 현 교황에 의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가 집례되었습니다. 이 역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을 가득 메운 조문객들은 전임 교황을 추모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계 뉴스의 단신으로 소개되던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영화 '두 교황'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열연한 안소..

REVIEW/MOVIE 2023.01.06

영리한 영화, 아웃핏(The Oupfit, 2022)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되며 '예상을 뛰어넘는 수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아웃핏'(The Outfit). 105분의 러닝타임 동안 무대가 되는 양복점을 벗어나지 않는 구성 덕분에 영화라기보단 오히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연극처럼 느껴지는 독특한 영화. 영리한 연출자는 시공간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한 영화의 장점을 버린 대신 '폐소공포' claustrophobia가 느껴질 정도의 서스펜스를 손에 넣었다. 그레이엄 무어(Graham Moore)의 필모그래피는 간소하다. 앨런 튜링(Alan M. Turing)의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5)'으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면서 데뷔 첫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쳤..

REVIEW/MOVIE 2023.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