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이 시대의 언론을 반추하다, 스포트라이트

mimnesko 2023. 2. 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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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2015)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미국 보스턴의 유력 언론지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 취재팀, 스포트라이트가 2001년 보도하여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던 미국 내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 성범죄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보스턴 클로브의 새로운 편집장으로 부임한 마티 배런(Marty Baron, 리브 슈라이버 )은 '존 게오건'(John Joseph Geoghan)이란 신부가 보스턴 내 여러 교구를 옮겨다니며 아동 성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정황이 있었는데도, 피해자와의 합의했다는 이유로 서둘러 사건이 종결되고 이를 보도하는 기사도 단신에 불과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당시 가톨릭 교회, 특히 보스턴 교구를 맡고 있던 '버나드 로(Bernard Francis Law)' 추기경의 조직적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마티는 스포트라이트 팀을 이끌고 있던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 扮)에게 이 문제를 스포트라이트에서 다루어 기사화할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보스톤 토박이었던 로비에겐 이 요청이 간단하지 않았다. 보스턴 내에서 가톨릭은 존경받는 종교였다. 보스턴 교구의 로 추기경은 다음 교황의 유력한 후보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의 반발이 눈에 보 듯 뻔했다.

 

"교회랑 소송을 하겠다고? 잘 생각해. 그 사람들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야..."

팀장 로비뿐 아니라, 같은 팀의 기자 샤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 扮)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차가운 시선을 감내해야만 했다. 예상은 했지만, 교회가 연루된 사건을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신성모독'의 꼬리표가 달렸다. 스포트라이트 팀원들조차 사건의 중대함은 체감하기엔 너무 먼 일이었고, 가족들과의 냉랭한 아침식사는 가까운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게오건 신부 사건에 가톨릭 교회가 조직적으로 개입해서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나 정황을 확보하기 위해선 보스턴의 검찰과 법원의 협조가 절실한데 신문사의 공식적인 요청은 묵살되거나 반려되었다. 결국 스포트라이트 팀은 법원의 정보공개요청을 하기로 한다. 이것은 그 자체로 가톨릭 교회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었다. 보스톤 글로브의 주 독자층이 가톨릭 교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무모하기까지 한 시도였다. 

 

 

편집장 마티는 탐사보도팀이 법원의 정보공개요청을 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보스톤 글로브의 CEO를 찾는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그렇습니다."

"교회의 반발이 심할 게 뻔한데... 우리 구독자의 53%가 가톨릭 신자라 걸리는군"

"...그 분들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

"......"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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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팀을 통해 '언론'의 힘과 기능에 대해 묻는다.

언뜻 '거대 담론'처럼 보이는 사회적 주제도 결국은 내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소함'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탐사보도팀에게 필요한 용기는 '가톨릭교회'라는 거대한 상대를 마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을 밝히는 과정과 수순에 불과했다. 정작 그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이 사건이 미칠 '사회 변동'에 자신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그 끝을 봐야한다는 점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그래봐야 월급쟁이 아닌가? 신문사도 엄밀히 말하면 비즈니스 아닌가?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이런다고 뭐 하나 달라질 게 있겠는가? 결국 나만 손해지..."

 

먹고살리즘, 이란 마땅히 지켜야 할 '사회의 가치'를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환치하는 것이다. 어떤 핑계를 덧붙이더라도 그 졸렬함은 피할 수 없다. 만약 언론인이 '먹고살리즘'에 매몰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영화는 보이지 않는 반어법으로 끊임없이 묻는다. 만약 이들이 질문하지 않았다면? 만약 이들이 자신들의 먹고살리즘에 매몰되고 말았다면? 만약 이들이 할만큼 했다는 지점에서 멈췄다면? 

진실을 거스르는 유혹은 끊임없고 교활하며 성실하다. 그 유혹은 달콤하고 매력적이다. 자, 당신이라면 어디서 멈출 것인가? 

 

 

이후 마티 배런은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의 임기 중 워싱턴 포스트는 퓰리처 상을 10회 수상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CEO는 "그의 8년 간의 노고 아래 WP는 극적인 재기를 경험하고 새로운 저널리즘의 고지에 올라섰다. ...편집국장으로서 보도의 영역을 크게 확대했고 훌륭한 보도에 영감을 줬고 멋진 디지털 전환을이뤄냈고 전례 없는 수준으로 독자와 구독자 수를 늘렸다."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당시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라는 유명한 슬로건으로 잔멸하고 있는 미국 의회주의에 경고를 던졌다. '밤의 대통령'을 자처하던 국내 모 언론사의 사주를 떠오르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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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역시 하나의 '기업'이라는 주장은, 언론 스스로가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애처로운 변명에 불과하다. 언론인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네 번째 기둥'을 자처하지만 그것은 언론 스스로의 엄정한 자기 검열과 반성이 선행될 때나 가능한 일이다. 한국 언론의 왜곡과 잘못된 관행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문제시 되어 왔지만(과거 '신문읽기의 혁명'(손석춘 저, 1997)이라는 책에서 이미 언론의 문제는 적나라하게 보고된 바 있다), 최근 들어 그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한국 언론 스스로가 '비즈니스'임을 자처했고, 그들의 대주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떠벌리고 있는 실정이니 독자들이 적어도 제대로 된 기사를 읽으려면 언론사의 주주 현황이나 지분 구조를 살펴햐 하는 날이 도래하고 말았다. 그 지분 구조 속에는 최근 국내 언론의 이상한(?) 횡보를 이해하게 하는 단서들이 담겨 있다. 

 

코리아헤럴드 지분구조 변화 (출처 : 미디어 오늘)

 

서울신문 지분구조 변화 (출처 : 미디어 오늘)

 

 

그야말로 대형 건설사들의 약진이 아닐 수 없다.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건설사들이 언론사를 장악하고, 소위 '경제 기사'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가능했던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심지어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가입되어 있는 전경련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내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분 구조로 언론사 하나를 나누어서 소유하고 있다(최근엔 YTN을 인수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 지분 구조 (출처 : 미디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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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내가 '구독하지 않는 신문'을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포털 메인에 걸린 제목을 클릭하여 뉴스를 접하고 있다. 그 제목이 선정적일수록, 소수 정파에 유리할수록, 국민을 양분하는 제목일수록 클릭 수가 높다. 클릭 수로 배분하는 언론사의 이윤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기사를 누가 썼는지, 어느 신문사의 기사인지는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기사를 선택하면 할수록 오히려 진실로부터 멀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보도는, 그것이 엄정한 실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의 상황 속에선 마치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최근 유료구독자 1천 만 명을 돌파했다는 뉴욕타임즈의 쾌거는, 계란판의 재료 정도의 가치를 갖는 한국 신문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우주 저 어디쯤에 있는 미지의 땅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므로 마블 영화를 보는 마음으로 이번 주말에는 이 영화를 꼭 보자. 두 번 보자. 넷플릭스부터 어지간한 OTT에서 모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화이다. 보고 또 보자. 

 

 

영화 스포트라이트 출연진과 당시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원 들. 그렇다 이들은 실재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