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BOOK 7

소년이 온다

한강 - 소년이 온다 이 책을 손에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알록달록한 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과 달리, 그 내용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에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에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에서 저는 이미 광주의 조각들을 보았습니다. 아니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광주사태, 광주항쟁, 광주 민주화 운동이 정작 언제 벌어진 일인지는 몰랐습니다. 5월 18일 하루에 그 모든 일이 다 일어난 걸까? 그 잔인하고 끔찍한 일들이 조각 조각들이 그 날 하루에 벌어진 일이었나? 손가락만 까딱하면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요즘에도, 억지로라도 그 검색어를 입력해 보지는 않았..

REVIEW/BOOK 2024.03.21

십자가 위의 예수

십자가 위의 예수 스탠리 하우어워스 저, 신우철 역 (새물결플러스, 2009) 。 많은 교회들이 고난주간, 특히 성(聖)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일곱 말씀으로 특별한 예배를 준비하거나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래서인지 ‘가상칠언(架上七言)’을 다루는 대부분의 글들은 ‘목양의 목적’으로 쓰였거나, 혹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Christ)와 같이 청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내용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 듀크대학의 교수이자 ‘한나의 아이’ 저자로도 국내에 잘 알려진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십자가 위의 예수’라는 가상칠언에 대한 묵상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에도 큰 기대(?)없이 서론을 훌훌 넘기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한 문장에서 눈이 딱 멈추..

REVIEW/BOOK 2024.02.27

찐 맛집 같은 교회

“작은 교회의 설교와 예배” - 윌리엄 윌리몬, 로버트 윌슨 공저, 전의우 옮김, 비아토르 오랫동안 방황을 하더니 최근에서야 신앙을 갖게 된 후배를 반갑게 만났다. 흥미롭게도 후배에겐 코로나 팬데믹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기독교 신앙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소통의 창구가 없었던 후배는, 여러 교회의 온라인 예배, 웨비나(webinar) 등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정돈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 어느 교회에 출석하고 있어?” 함께 있던 다른 지인이 물었다. “그냥 작은 교회예요.” “그냥 작은 교회가 어디 있어? 교회 이름이 뭔데?” “말해도 모르실 거예요. 동네에 있는 그냥 작은 교회예요.” 여의도순복음교회, 명성교회,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 선한목..

REVIEW/BOOK 2024.01.18

한국교회 트렌드 2024

지난 해 출간되었던 ‘한국 교회 트렌드 2023’은 ‘플로팅 크리스천’, ‘SBNR’이라는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많은 교회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이 책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의 교회 사역들을 기획하고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와 ‘트렌드’를 한 문장에서 함께 읽는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사회 문화적인 변화와 교회가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고 그 변화와 그 흐름을 잘 읽어내는 것 역시 목회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뉴노멀 시대의 친절한 가이드 북 하지만 1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교회 내에서 트렌드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고 또 다수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 트렌드 2023"이 한국 교회에 큰..

REVIEW/BOOK 2024.01.08

혐오와 증오의 사회

혐오(disgust)는 불편함이다. 나와 다른 타자로부터 느끼는 불일치에 대한 불편함일 수도 있고, 청결하지 못한 대상에 대한 찌푸림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이런 '혐오의 감정'은 있다. 그것이 바퀴벌레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불균형한 건출물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일 수도 있다. 이것은 잘못인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도덕적 감수성의 문제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이러한 '혐오'까지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이러한 '혐오'는 지극히 개인의 감정에 불과했다. 혐오가 집단화되는 것이 증오(hatred)이다. 데카르트의 영리한 지적처럼, 증오는 어떤 특정한 집단 내의 혐오 대상이 완전히 제거될..

REVIEW/BOOK 2023.08.21

일각수의 꿈

누군가 나에게 하루키 소설 중 한 권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상실의 시대'(원제는 노르웨이의 숲, 이지만 사실 한글제목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물론 하루키는 동의하지 않겠지.)를 추천해 주곤 했다. 개인적인 호감의 순위로 본다면 '상실의 시대'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앤딩'보다 조금 앞선 순위이고, 'TV 피플'보단 조금 아래였다. 전체적으론 중간(확고하게 '댄스 댄스 댄스'가 중간을 차지한다)보단 좀 아래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실의 시대'를 선뜻 권하게 되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상실의 시대'는 하루키를 이해하는 리트머스와도 같은 책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상당한 분량이다. 하루키는 완성도 높은 단편을 잘 쓰는 작가다. 그런데 한 번 길게 쓰기 시작하면 도대체 어디쯤에서 ..

REVIEW/BOOK 2014.02.24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이문열의 말처럼, 누구나 인생에 한번 쯤은 신춘문예라도 응모할 듯이 원고지를 휘갈기고 싶을 때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배설의 욕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 당시 내 책꽂이에는 몇몇 작가의 책들이 편협하게 꽂혀 있었다. 우선 이문열의 책들(삼국지를 제외한)이었고,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이문열 전집까지 10권 남짓한 그의 책들이 있었다. 이후 김승옥의 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컬랙션으로 출간되어 모두 구입했다. '무진기행'이라는 단편으로 이름만 아는 정도였던 김승옥의 소설은 놀랍게도 여타의 책을 지그시 눌러줄 수 있는 압력을 가지고 있었다. 왜 이어령 씨가 이 분을 호텔방에 감금(?)까지 하며 이상문학상의 첫번째 수상을 안겨 주었는..

REVIEW/BOOK 2010.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