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BOOK

1Q84 (무라카미 하루키)

mimnesko 2010. 8. 13. 02:21

이문열의 말처럼, 누구나 인생에 한번 쯤은 신춘문예라도 응모할 듯이 원고지를 휘갈기고 싶을 때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배설의 욕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 당시 내 책꽂이에는 몇몇 작가의 책들이 편협하게 꽂혀 있었다. 우선 이문열의 책들(삼국지를 제외한)이었고,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이문열 전집까지 10권 남짓한 그의 책들이 있었다. 이후 김승옥의 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컬랙션으로 출간되어 모두 구입했다. '무진기행'이라는 단편으로 이름만 아는 정도였던 김승옥의 소설은 놀랍게도 여타의 책을 지그시 눌러줄 수 있는 압력을 가지고 있었다. 왜 이어령 씨가 이 분을 호텔방에 감금(?)까지 하며 이상문학상의 첫번째 수상을 안겨 주었는지 몇 개의 단편만으로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묘하게 김승옥과 하루키는 닮아 있다. 스콧 피츠제랄드와 하루키가 닮아 있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만약 하루키가 김승옥을 '달려라 토끼'보다 먼저 알게 되었더라도, 그의 글쓰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아니, 오히려 더 정밀해지고 농밀해졌으리라...
그런 하루키의 책이 책꽂이의 한 칸을 채우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 이후로 비어있던 자리를 채웠던 소설 1Q84. 누군가 '아이큐 84'로 잘못 읽어 한바탕 웃음(이 웃음은 다들 한번쯤은 그렇게 읽었다는 묘한 동류감에서 터진 웃음이다)이 터졌던 묘한 제목이다. 첫 느낌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닮아 있다. 마치 소리뽑기의 핑크빛 손녀딸이 돌아오기라도 한 듯한 느낌이었다. 왼손의 동전과 오른손의 동전을 따로 세어 두뇌를 연마하던 계산사의 등장처럼 돌연했던 아오마메의 등장. 그리고 세계의 끝처럼 펼쳐지는 공기번데기의 이야기들.

하루키의 문장
하루키는 글을 이어가는 재주가 있다. 놀랍도록 호흡이 좋다. 전화번호부만큼이나 두꺼운 분량의 책이 신기하게도 훌훌 잘도 넘어간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두터운 책의 중간쯤에 보람줄[각주:1] 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아쉬워진다. 아직 덴고도 아오마메도 놓아주기 아까운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은 2권으로 끝내는게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발매된 3권을 예약구매로 구입해서 한달음에 읽어보았는데, 1, 2권 만큼의 몰입이 없다. 마치 길고도 긴 후일담을 읽은 기분이었기 때문일까.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소설을 견인해 가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1,2권의 스토리텔러 들에 비하자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르다.

그래도 하루키의 건조한 문장을 만나는 일은 꽤 즐겁다. 최근에서야 읽게 된 '먼 북 소리'에서 느껴지는 하루키의 모습은 '노르웨이 숲'이나 '코끼리 공장의 해피앤딩'에서 느껴지는 하루키와 닮았다. 마치 깊게 새겨진 흉터처럼 나이가 들어도 틀림없이 제 자리를 지킬 줄 안다. 같은 바다, 같은 산을 보더라도 그의 문장속에선 묘하게 하루키의 바다와 하루키의 산이 되어 버릴 것만 같다. 갑자기 바다의 빛이 투명해지거나, 갑자기 산속의 소음이 사라져 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하루키의 글은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가깝게 다가오는 현실 속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는 비현실의 기술이다. 그런데 이 비현실의 존재감이 너무나 생생해서 오히려 현실의 세계를 훼손하곤 한다. 마치 매트릭스와도 닮아 있다. 그것은 실체와 그림자의 세계처럼 견고하게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가깝게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 두 세계를 오가는 사람은 리틀피플과 하루키 본인 정도?

여전한 장난끼
아마도 이 책은 하루키에게 있어 꽤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듯 보여진다. 그의 장난끼는 여전하고, 재즈에 대한 사랑이나 여성의류에 대한 해박함도 여전하다. 무엇보다 인물의 면면과 그들의 대사는 하루키의 장난끼가 여전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태엽감는 새를 읽으면서도 그런 점에선 감탄을 했다. 지루하게 계속되던 노몬한 전투 이야기조차 그의 장난끼는 숨김 없이 드러난다. 그는 해박하고 독립적이며, 지적으로 약간 거만하면서도 소심하다. 비좁은 독서편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번 읽은 것은 끝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직 1Q84의 세번째 이야기를 다 읽지 않은 상황에서 장구하게 써내려간 글이라 확신은 없지만, 아직 읽지 않은 이야기가 저 만큼 남아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는 작가를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1. 우리가 '책갈피'라 잘못 말하는 갈피줄을 '보람줄'이라고 한다. 책의 갈피란 말 그대로 책장과 책장 사이를 말하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