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BOOK

십자가 위의 예수

mimnesko 2024. 2. 27. 10:00

 

 

십자가 위의 예수


스탠리 하우어워스 저, 신우철 역 (새물결플러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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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교회들이 고난주간, 특히 성(聖)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일곱 말씀으로 특별한 예배를 준비하거나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래서인지 ‘가상칠언(架上七言)’을 다루는 대부분의 글들은 ‘목양의 목적’으로 쓰였거나, 혹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Christ)와 같이 청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내용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 듀크대학의 교수이자 ‘한나의 아이’ 저자로도 국내에 잘 알려진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십자가 위의 예수’라는 가상칠언에 대한 묵상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에도 큰 기대(?)없이 서론을 훌훌 넘기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한 문장에서 눈이 딱 멈추고 말았습니다.

 

 

“이 묵상집의 신학적 성경을 강조한다고 해서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묵상이 다른 해석들보다 ‘뛰어나거나’ 더 ‘지적이라고’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반대이다. 나는 가상칠언을 신학적으로 읽을 때 내 주장이 말씀 자체를 대체하지 못하도록 무던히 노력했다. 신학은 교회를 섬기는 학문이다. 하지만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신학에 소명을 받은 사람들은 신학을 사용하여 종(신학)이 섬기도록 되어 있는 사람들 위에 군림할 권력을 얻을 수도 있다.”  - 17쪽

 

 

이 흥미로운 신학자의 수다(‘한나의 아이’를 읽으셨다면 충분히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에 홀딱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점을 나올 땐 어느새 이 책이 쥐어져 있었으니까요.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신학자들의 담론이 오히려 ‘믿음을 이념적으로 왜곡하려는 시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그는 로완 윌리엄스의 말을 빌어 “항상 ‘회중’ 밖에서 회중이 드러내는 것을 인식하려고 분투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신학은 예배 시 교회가 수행하는 예언적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 ‘겸손’이라는 인식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이 묵상집이 신학적 거만함이나, 교회가 미처 모르던, 혹은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들춰내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하고 있습니다(아, 실제로 그런 글들이 얼마나 또 많은지요).

 

“나는 이 묵상들이 기독교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겸손’과 같은 덕목을 고양하는데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 복음을 배신하려는 끝없는 유혹―교회 역사를 통해 충분히 드러난 이 유혹―을 관용이라는 이름의 거짓된 겸손을 모방하려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거부할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중략) ··· 그리스도인들이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기도했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다.” - 21쪽

 

 

그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시작하는 글’을 갈무리합니다.

 

“나는 위에서 이런 묵상집을 쓰는 일이 어렵고 힘겨운 과정이었음을 고백하였다. 내가 한 작업이 과연 묵상집으로 불릴 만한지조차도 확신이 없다. 이 책은 분명히 설교가 아니다. 또한 제대로 된 신학책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신학책’을 썼는지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 책의 성격이 어떠하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우리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의해 구원받았고, 말 그대로 영원히 산다는 것이 가능해졌음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발견하게 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 23쪽

 

 

이 얇은 책 ― 참고문헌까지 127쪽입니다 은, 그러나 예수님의 일곱 말씀에 대해 결코 얇지 않은 질문과 묵상을 전해 줍니다. 가상칠언 중 네 번째 말씀(‘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26)의 묵상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상의 이 말씀은, 그리고 십자가 자체는 적어도 우리가 이해한 모든 능력의 흔적이 사라질 때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성령의 권위적 증거는 모든 형태의 인간적 권위가 사라질 때 가장 뚜렷이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중략) 우리는 이 울부짖음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면 바보가 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구하고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호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폭력으로 우리를 구원하길 거부하는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분인지를 드러낸다.” -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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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聖子) 하나님이 절명하는 순간, 그 간절한 외침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장 극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저지른 죄 때문에 버림받으셨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세상이 십자가에 의해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노(老) 교수는 말합니다.

 

간혹 우리의 이해의 범주 안에 예수님의 외침을 끌어들여 감정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나, 또는 성부와 성자의 엄정한 구분이 그 속에 있음을 주장하며,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이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시라고 주장하는 ‘가현설’과 다름없는 이단적 주장으로 이 외침을 해석하려는 시도들(그런 시도들이 얼마나 교묘하고 또 많은지를 알게 되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이 얼마나 본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명학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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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하우어워스가 고백한 것처럼, 이 책은 설교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학적 주제와 논증이 가득한 논문도 아닙니다. 그러나 신학적이며 동시에 목양적이기도 합니다. 사순절을 통과하며, 고난주간과 성금요일에 ‘가상칠언’에 대한 묵상을 조금 더 깊이 나누고자 준비하는 많은 목회자들이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긴 일곱 말씀을 조금 더 깊이 묵상하고자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