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베네딕토 16세의 선종, 그리고 영화 '두 교황'

mimnesko 2023. 1. 6. 11:58

2022년의 마지막 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종했습니다.

2013년 2월, 그는 생존한 교황으로서 교황직에서 사임한 가톨릭 역사 상 두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교황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9년 동안 자연스럽게(?)두 명의 교황이 가톨릭에 존재했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업무는 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맡고 있었지만, 생존한 전임 교황의 권위는 후임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5일 현 교황에 의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가 집례되었습니다. 이 역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을 가득 메운 조문객들은 전임 교황을 추모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계 뉴스의 단신으로 소개되던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영화 '두 교황'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열연한 안소니 홉킨스, 그리고 후임 교황 프란치스코를 열연한 조나단 프라이스(네, 왕좌의 게임에 나왔던 바로 그 신흥 교주 맞습니다)의 탁월한 연기와 생존 인물들과의 놀라운 싱크로율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냐는 혼란을 주었던 바로 그 영화입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독일 태생의 베네틱토 16세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는 서로가 살아온 길이나 성장 배경, 사상, 가치관 그리고 유머 코드까지 무엇 하나 비슷한 부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믿음'이라는 거대한 둘레 안에 서로가 함께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실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때부터 바티칸의 '신앙교리성 장관'을 역임할 정도로 보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가톨릭 신학자로 잘 알려져 있었다. 독일어를 비롯한 히브리어까지 7~8개국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대단한 석학이었다. 그는 재임시절 무신론, 세속주의, 상대주의와 힘겨운 싸움을 했고, 특히 남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의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반면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남아메리카, 특히 아르헨티나의 빈곤과 자유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물론 교황에게 순명서원을 한 추기경이 바티칸 전체의 신학적, 정치적 판단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내어놓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당시 바티칸이 오히려 남미의 독재자들을 남몰래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에서는 한 발 비켜설 수 있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가 사임 후 콘클라베를 통해 266대 교황으로 그가 선출되었을 때, 브라질 상파울루의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은 그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며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는데, 추기경의 삶의 궤적을 잘 알고 있는 지인의 당부이자 이전과 다른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신임 교황이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을 선택한 것 역시, 그 순간 가난한 자들의 신부이며 자연의 친구였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프란치스크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전 공문을 통해 화려한 축하행사나 화동(花童)의 동원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당시 박근혜 정부는 화동뿐 아니라 예포까지 쏘면서 성대한 환영식을 준비하는 바람에 빈축을 산 적도 있습니다. 특히 교황이 국산 소형차를 이용해 광화문의 세월호 유가족들을 방문했을 때, 오히려 대규모 경찰을 동원하여 현장을 통제하는 등 교황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행보로 외신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파악하지 않았거나, 국내 추기경들의 조언조차 묵살한 행태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이상한 대응이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두 교황'은 서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뿐 아니라 다양한 은유와 상징들을 통해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의 교황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래서인지 그 내용의 적절함 여부를 떠나 영화적인 서사와 장치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 여러 장면들이 가득합니다. 전작 '눈 먼 사람들의 도시'를 제대로 말아 먹은 감독의 재기작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주인공 두 사람의 경탄할만한 연기가 압권입니다. 현직 교황과 사사건건 맘에 들지 않는 추기경의 투샷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마음 가득 채워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건 연기자의 힘이 80% 이상입니다. 

 

특히 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에 깨알처럼 보여지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8강,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경기 장면은 놓칠 수 없는 재미를 줍니다. 실제로 두 교황이 축구 경기를 나란히 보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열렬한 축구팬인 것을 감안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4대 0으로 독일에게 지며 8강 탈락의 수모를 겪게 됩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현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가 마침내 월드컵에 우승한 2022년 마지막 날에 선종한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공식적인 유언이 아니라, 곁에서 간호하던 간호사가 전한 이야기입니다)은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였습니다. 그 그 한 마디의 울림은 영화 '두 교황'의 마지막 장면과 묘하게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불이 꺼진 촛대의 연기가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그의 마지막 기도 역시 조심스레 하늘에 닿았기를 바랍니다.  

 

 

* 영화 '두 교황'은 아직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