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병맛을 원해? 그래 어디 끝까지 달려보자!

mimnesko 2023. 3. 17. 13:48

 

영화관에서 팝콘 좀 먹어봤다는 사람들이 2022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았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제목만 들어서는 도무지 무슨 영화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고,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뭔가 굉장하고 동시에 산만한 영화"라는 식의 신통찮은 답변만 돌아오던 영화. 그래서 포스터 속 양자경의 멋진 포즈만 보고선, "아, 새로나온 홍콩 영화구나"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가 95회 아카데미에서 무려 7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덕분에 대작을 미처 몰라 본 범인들의 참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수상내역도 놀랍다. 작품상, 감독상(다니엘스, 감독이 2명의 다니엘이라서), 여우주연상(양자경), 여우조연상(제이미 리 커티스), 남우조연상(키호 이 콴), 각본상(다니엘스), 편집상(폴 로저스, 당신에게 경의를....)이다. 음악상, 주제가상도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아쉽게도 수상의 행운은 없었다. 아카데미뿐 아니라 골든 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인디팬던트 스피릿에서도 죄다 상을 휩쓸고 있는 중이다. 300억 대의 제작비로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영화가 최근에 있었던가? 한국에서는 올빼미에 밀리고 아바타 : 물의 길에 결정적 어퍼컷을 맞은 뒤 OTT로 직행했던 이 영화의 쾌거는 놀랍기까지 하다. 

 

 

출처 : 다음영화

 

 

영화의 스토리는 단촐하다.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양자경 扮)은 세금 체납으로 국세청의 조사를 받게 된다. 이 와중에 남편 웨이먼드(키호 이 콴 扮)는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하고 이민 2세대로 자란 외동딸 조이(스테파니 수 扮)는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계획한다. 이 엉망진창의 가족사는 '멀티버스'의 날개를 달고서는 말 그대로 '천마행공(天馬行空)'하기 시작한다. 루쏘 형제가 제작을 했다더니 제작비와 함께 마블의 대환장 세계관이라도 들고 온 것인가!! 카메라는 종회무진하고 서사는 울렁이는 화면과 함께 널뛰기 시작한다. 밑도 끝도 없이 꺼져가는 세계관을 보고 있노라면 "감독이 누구라고?"라는 질문이 절로 나온다.

 

그래, 감독이 누구라고? 다니엘 콴? 그게 누구야? 

정확히는 다니엘 콴과 다니엘 샤이너트 두 사람의 공동연출. '다니엘스(Daniels)'라면 이미 몇몇 뮤직비디오로 '병맛 제조기'라는 나름의 유명세(?)를 얻고 있던 괴짜 친구들이 아니던가. 잭 블랙의 똘끼가 탱천한 Tenacious D의 'Rise fo the Fenix'가 바로 이들의 작품이다.

 

 

https://youtu.be/ls3rD8VfiSY

 

 

다니엘스의 뮤직비디오 몇 편만 보더라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정신없이 날뛰는 화면이 납득이 된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병맛이라니! 도저히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는 영화를 얼마만에 만나는 것인가! 

 

온 우주를 교차하며 너무나 친숙하지만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과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에블린의 모습은 안스럽기까지 하다. 과거 '예스 마담'시리즈로 너무너 친숙했던 양자경이었다가 동시에 '와호장룡'의 날렵한 무사 '수련'이며 '스타트랙 : 디스커버리'의 필리파 조지우로 널뛰듯 변신하는 그녀의 모습은 심지어 '돌'이 되어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멩이 두 개에 눈물을 흘렸을까...)

 

 

출처 : 다음영화

 

 

흡사 양자경을 위한 양자경의 양자경에 의한 영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영화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일인 다역을 소화하는 조연 배우들의 화려한 연기력에 의해 탄탄하고 견고한 지지를 얻고 있다. 손가락이 길쭉한 '천하장사' 소시지처럼 변한 어느 우주에서의 로맨스마저 조연들의 그 탄탄한 연기력 덕분에 나름의 설득력이 생길 정도. 특히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제이미 리 커티스(할로윈의 단골 배우이자 최근 '나이브스 아웃'에서 멋진 연기를 보였줬던 바로 그녀이다)의 다중 연기는 정말이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출처 : 다음영화

 

 

다중우주로 급발진했던 영화는 클리세 비틀기를 반복하며 아슬아슬하게 연착륙하더니 '아카데미'를 받을 만한 훈훈한 미덕을 남기며 마무리 된다. 마치 한 편의 기나긴 뮤직 비디오를 본 것 같은 느낌은 비록 이 영화가 '대작'이라기 보다는 '소품'에 가깝다는 것(그래서 아카데미 7관왕이 좀 낯설게 느껴지는)을 계속 떠올리게 하지만, 병맛 아이디어 하나를 이처럼 끝까지 밀어 붙인 두 감독들에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래 뚝심이란 건 이런 거지. 

 

 

출처 : 다음영화

 

 

아카데미 수상 이후 영화가 재개봉되는 분위기이지만, OTT에서 볼 수 있다면 굳이 극장을 찾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대작'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B급 영화로서의 충만한 자신감은 거실의 TV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고,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를 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두 개의 돌이 나오는 장면에서만 긴장을 늦추지 말 것.

 

양자경의 수상 소감은 사실 이 영화의 스포일러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그녀의 말은 귀를 기울여 볼 만 한다. '그리고 여성 여러분'도 꼭 넣어서 읽어보자(덕분에 뭇매를 맞았던 SBS도 앞으론 꼭 그래주길 바란다). 

 

오늘 밤 나와 같은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트로피는 희망과 가능성의 불꽃이다. 꿈이 실현된다는 증거다.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해라. 
그리고 여성 여러분, 
그 누구도 여러분의 황금기가 지났다고 말하도록 두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