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91

하루 종일, 비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마른 땅을 적시는 그 비 냄새를 참 좋아했다. 나른하게 내리는 봄비를 툭툭 털어내며 걸었던 기숙사 가던 길도 참 좋았고, 아펜젤러관 아치 지붕 아래에서 굵은 빗줄기로 쏟아지는 장맛비를 보는 즐거움도 작지 않았다. 쏴아아, 하고 비가 내린다. 온 사방이 어둑해진 도시의 풍경은 잔뜩 움츠린 고양이 같다. 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금새 고양이는 무슨 하며 툭툭 털고 일어나 손을 내밀어 비를 만진다. 손바닥 위로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빗방울은 무색이다. 누구는 황사가 들었다면서, 또 누구는 방사능 빗줄기라면서 별로 막을 길 없는 빗줄기를 나뭇잎만한 손바닥으로 가리고 뛰어다니지만... 빗방울은 1억년 전부터 빗줄기여서, 투명한 그 물빛에 왠지 모를 거대함이 느껴진다. 방사능 따위... ..

REMEMBRANCE 2011.05.09

민수기 15장 : 네 귀퉁이의 옷술

3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에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의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41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 민수기 15장 37~41, 개정개역성경 본문의 설명대로 옷술(치치트, tzitzit)은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민족의 옷단 귀에 청색 끈을 더한 옷술을 ..

REMEMBRANCE 2011.04.01

waterman

Waterman Hemisphere Moonlight CT 늘 누군가에게 선물하던 만년필을 큰 맘 먹고 구입했다. 중요한 미팅 자리에서 필통꺼내 필기구를 꺼내는 일이 어쩐지 얼굴 뜨거운 일로 여겨질 무렵부터 만년필을 하나 사야겠다, 라는 호기를 부렸다. 종이 위에 사각거리며 잉크를 남기는 그 소리와 느낌이 좋아서 만년필은 오래전부터 위시리스트에 있었지만, 딱히 큰 필요가 없다는게 늘 뒷목을 잡곤 했는데, 이 정도는 나이에 걸맞는 소품이야, 라는 억지와 함께 마침 일이 있어 나간 차에 광화문 핫트랙에서 구입했다. 워터맨 헤미스피어는 만년필로는 매우 착한 가격(몽블랑을 검색해보라!)의 프랑스 제품이지만, 그립감부터 펜촉의 느낌까지 만년필의 기본이 제대로 잡혀 있다. 컨버터(위의 사진에서 만년필 옆에 있는 것..

REMEMBRANCE 2011.03.19

호타루의 빛

최근에 재미있게 보았던 일본드라마, 호타루의 빛 일본어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자막의 힘은 늘 놀랍다!), 인트로에 나오는 영상을 보고 호타루=반딧불이 아닐까 추측해보는 정도지만 드라마의 내용은 '반딧불'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주인공의 이름이 제목과 같은 호타루(아야세 하루카). 이 드라마에선, 회사에서는 능력있고 깔끔한 여직원이지만 집에서는 '주머니가 뒤집어진' 트레이닝복 차림에 아무렇게나 모아 하나로 묶은 머리, 한 손에는 캔맥주와 입에는 오징어를 질겅거리는 여성을 '건어물녀'로 정의하고, 주인공을 그 '건어물녀'의 대표주자로 등장시킨다. 그녀가 건어물녀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무리. 절대 무리, 죽어도 무리, 죽었다 깨어나도 무리"이다. 우연히(라고 말하기엔 어이없는) 같은 집에 동거아닌 동거를 하..

REMEMBRANCE 2011.03.18

견인

갑자기 엑셀러레이터가 작동하지 않을 때의 당혹함이란... 다행히 큰 길에 들어서기 전이었지만 여러 골목이 교차하는 좀 애매한 지점에서 차는 거짓말처럼 서버렸다. 엑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엔진은 마치 성치않은 폐를 가진 사람의 밭은 기침처럼 쿨럭쿨럭거리더니 이내 멈춰버렸다. 하필이면, 시간 약속을 해 두고 차를 몰고 나가던 참이다. 그것도 앞으로의 1년간의 삶이 어떻게 될까, 고민하며 나가던 참이라 더 '하필'이었다.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어 바로 보험사의 견인 서비스에 연락을 했다. 때마치 3월의 눈이 꽃가루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뭔가 안 좋은 일의 전조처럼 잔뜩 흐린 날씨. 갑자기 서 버린 엔진. 괜찮은걸까?

REMEMBRANCE 2011.03.18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뉴욕에 있던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친아들처럼 아껴주셨던 장로님과 권사님. 가만히 생각해보니, 장로님을 처음 뵈었던 것이 1988년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 했던 때였습니다. 좋은 교회선생님으로 뵙게 된 장로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저에겐 참 중요한 나침반이세요. 신앙이나 개인의 삶이나 때론 용기나 결단에 대해서도 장로님의 말씀이 가슴에 오래 각인되어 있습니다. 권사님께서 그곳 교호에서 전도사로 섬기시는 모습이 참 좋은데, 밤 10시 퇴근은 너무 가혹해요. 아침부터 수고하시는 권사님 덕분에 아무 대책없이 미국으로 날아간 사람들이 간신히 터전을 잡아가는 거겠지만, 건강이 어떠실지 걱정이 앞서더라구요. 늘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두분, 그리고 소영자매의 귀여운 딸 시드니도 모두 건강하시길...

REMEMBRANCE 2010.08.25

예수님의 자리...

이명박 정부에서 '고소영'내각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리고 그 뜻이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얼굴이 마치 불이라도 덴 듯 확 달아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이 소망교회의 장로라서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명만 있고 권리가 없는 자리가 '장로'인데 그런 자리에 앉았다 한들 그것이 정치적 기반이 되고 또 인맥이 되어 이 정권의 인력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제 신앙의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상식'이 되는 것이 요즘 한국 사회인 듯 합니다. 소망교회 장로 한 자리 하면, 이 정권에서 내각 한 자리쯤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듯 보입니다. 위장전입을 했든, 땅 투기를 했든,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가 뭐..

REMEMBRANCE 2010.08.19

PD수첩도 결국 재갈이 물리는가...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0030&newsid=20100817233909035&p=mk&RIGHT_COMM=R1 MBC의 PD수첩이 결방되었습니다. 하천정비 사업이 대운하 사업으로 둔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천정비를 하면서 왜 수심이 6미터나 되어야 하는가, 하는 당연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전, 정말 궁금했습니다. 왜 운하로 배가 떠 다녀야만 선진국이 되는 건지, 참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대답을 들을 길이 없습니다. PD들이 고심하고 제작한 한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이, 정권의 입맛에 맞춰 임명된 사장과 이사회의 폭거로 인해 방송 몇 시간 전에 '취소'된 것입니다. 물론 해당 방송의 파장이 커졌을 경우 국토해양부의 입장..

REMEMBRANCE 2010.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