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유령은 존재하는가?

mimnesko 2024. 11. 27. 10:05

유령을 존재할까?

 

얼마전 유튜버 '궤도'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꽤 오래 전 비슷한 주제의 글을 자주 가던 블로그에서 본 기억이 났다. 

블로그의 필자 '미션리터'는 이쿠로 인자이가 쓴 '영은 존재하는가? - 과학의 시점에서'라는 글을 보고, 역시 이공계인의 시선으로 유령의 존재가능성을 검증(?)했다. 블로그의 흥미로운 점을 간단히 요약해 본다. 

 

유령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선 우선 '유령'이 무엇인가, 라는 정의가 필요하지만 그 개념확립이 어렵기 때문에 개념의 '보편적인 속성'으로 유령의 존재 가능성을 역추적하기로 했다. 

 

1. 유령은 벽이나 물건 등을 자유자재로 투과한다.

2. 유령은 대부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유령을 보았다.

이러한 보편적 특성을 가진 유령을 사람들이 '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보았다는 것은 대상이 '시각적으로 가시광선을 내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유령이 '가시광선'을 이용하지 않는 존재라면, 개인의 시세포에 임의적인 전기적 신호를 전달한다는 뜻인데, 이는 유령에게 안구의학적, 신경학적인 탁월한 지식이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유령 스스로가 발광체일 수 있다. 스스로 가시광선을 발산해서 사람들의 눈에 포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광'에 따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도대체 유령은 어떻게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있는가? 저자는 이 미지의 에너지원을 '유령 에너지'라고 명명하고, 차후 인류가 이 새로운 에너지원을 포착하게 될 경우 유령을 기업적으로 채집하여 새로운 에너지원(청정 에너지)로 활용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유령은 물질이다.

유령이 '물질'이라면 빛의 반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다양한 색을 가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빨간 색 유령이나 파란 색 유령도 가능하다. 굳이 빨간 휴지, 파란 휴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전히 문제는 있다. 만약 유령이 물질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일정한 형태로 구상화되는가, 하는 점이다. 화장 또는 매장된 개인의 어떤 '원자'(역시 유령 원자)가 발현되어 주위의 물질을 일정한 색(주로 흰색이다)을 끌어들여 새로운 물질로 재조직화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는 한참 논란이 되었던 스타트렉의 '텔레포트 딜레마'에 필적하는 논란을 일으킨다. 이 모든 논란을 종식시키는 한 가지 마법의 단어는 유령은 '비물질'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다시 '유령을 보았다'라는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유령은 질량이 있는가?

지구 상의 모든 물체는 질량을 가지고 있다. 질량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즉 우리가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질량'이 있기 때문이다. 궤도는 이것을 '고정좌표'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만약 유령이 비물질이고 질량이 없다면? 일단 질량이 없다면 중력과 관성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마치 '소리'와도 같다. 문제는 질량이 없다는 것은 '고정좌표'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구는 초속 500m의 속도로 자전을 한다. 그리고 태양을 중심으로는 초속 30Km의 속도로 공전을 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중심으로 초속 220km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으며, 우리 은하 역시 우리 은하단의 중심을 축으로 초속 600km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 이 거대하고 복잡하며 지독하게 빠른 속도의 궤도 이동을 과연 유령이 계산할 수 있는가? 

만약 유령의 질량이 '0'이라면 초속 6,000km를 달리더라도 운동에너지는 '0'이다. 따라서 유령이 한 지점에 나타나는 것은 이론적으론 가능하다. 그러나 한 지점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노력과 무한한 유령 에너지, 순간적인 계산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눈깜짝할 사이에 우주 공간에 떠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나타났다면 '그 다리는 돌려주는 게' 맞지 않을까? 다시 말해 유령이 내 눈앞에 보인다는 것은, 유령이 '물질'이고 '질량'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블로그의 저자는 유령이 물질이어도 또 반물질이어도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령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한 가지의 가능성은 염두에 둔다. "만약 유령이 존재한다면 공간에 충만해 있는 일종의 의지일 확률이 높다."

흥미롭게도 저자의 결론과 나의 시작점이 비슷했다. 마치 소리와 같이 대기를 진동시키는 누군가의 의지가 형상화된 것이 유령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의지'는 나름의 기억력을 공간에 투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유령의 세계가 우리의 3차원 세계를 넘어 n차원 어딘가에 있고, 일시적인 시공간의 중첩을 통해 가시화되는 것은 아닐까? 그 n차원의 세계는 미시 단위에서나 가능하다는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 세계는 아닐까? 이 경우엔 물리학적인 고찰보다는 방대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

 

물리학자의 고민이 끝나는 순간, 인문학자의 고민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