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어느 상담학자의 자살

mimnesko 2024. 12. 2. 09:48

 

2016년, 미국 시카고신학대학원의 로버트 무어(Robert Moor)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죽음이 몰고 온 파장은 컸다. 왜냐하면 그가 미국의 목회상담 분야를 이끌다시피 했던 상담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였고, 안토 보이스(Anton T. Boisen)에 이어 시카고신학대학원을 목회상담의 중심으로 일궈낸 장본인기도 했기 때문이다. 노년의 폴 틸리히가 몸 담기도 했던 시카고신학대학원은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과정신학, 퀴어신학 등 여러 진보적인 신학으로 더 유명하지만, 그 전에는 목회상담학, 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발원지였다. 

 

무어 교수는 미국 내에서서도 융(C. G. Jung)의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었고 특히 융의 집단 무의식과 틸리히의 궁극적 실재를 연결하여 새로운 신학적 정립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부인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도 알콜이나 약물, 마약 등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그의 죽음은 많은 목회상담학, 심리학자들에게 당혹감을 주기 충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어 교수의 죽음은 물음표로 남겨져 있다. 스스로 폭력을 가장 멀리했던 분이기에, 가장 폭력적인 죽음을 선택한 것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었으나 그중 어떤 것도 명쾌한 답변이 되지는 못했다. 

 


 

국내의 한 신학자는 그의 죽음을 뒤르켐의 '자살론'에 연결하여 설명했다. 그 설명에 공감도 되고, 지난 수십 년 간(정확히는 IMF 이후 부터이다) 전세계 자살율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옮겨본다. 

 

자살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 성과물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에밀 뒤르겜의 ‘자살론’은 자살을 둘러싼 현상학 혹은 종교사회학에서 이룩했던 성과 중 단연 빛나는 저작으로 지금까지 손꼽힌다.

뒤르겜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자살의 요인들, 예를 들어 정신질환, 유전적 요소, 인종적 특징, 계절과 자살의 관계, 알콜과 자살, 빈곤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후에 “자살은 사회적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뒤르겜의 발언은 자살이라는 죽음의 형식이 근대성의 일면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렸고, 그것은 현대의 자살현상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다. 

고. 중세 시대에도 물론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당대의 봉건적인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내세우는 강압 속에서 수치스럽고 욕된 삶을 산다고 생각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어 산업의 구조가 바뀌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촘촘히 얽히기 시작하면서 자살율은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봉건사회보다 근대사 회는 사회적인 끈끈함(social cohesion)이 느슨한 이기적(egoistic) 사회이다.

뒤르겜은 이기주의를 자살의 중요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지나친 이기주의는 자살을 유발하는 원인을 촉 발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자살을 유도하는 원인이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개인주의적인 삶이 고착화되면서 공동체를 바탕으로 했던 삶의 원리는 점차 사라져갔고, 개인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정글속에서 홀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뒤처지고 도태되는 개인이 다시 사회로 편입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근대적 삶의 패턴과 자살율의 증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뒤르겜은 최종적으로 사회적 통합의 정도가 자살율의 감소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하 였다: “자살은 종교 사회의 통합, 가족사회의 통합, 정치사회의 통합 정도에 반비례한다.”

뒤르겜에 의하면 자살율 1위를 자랑하는 한국사회는 종교의 사회 통합 기능면에서 실패하였고, 가정의 붕괴와 정치의 상실 또한 이미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실제로 한국은 전체 가구 중에서 1인 가구의 비중이 30%에 접근해가고 있고, 서울시의 1인 가구비율은 30%를 훌쩍 넘었다. 개인의 삶을 지탱한다는 최소 단위인 가정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또한 한국 국민의 성직자, 특별히 개신교 목사에 대한 신뢰와 존경의 수준은 밑바닥이고,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도 성직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한국사회의 현실은 뒤르겜의 자살률 증가원인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뒤르겜의 『자살론』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종교별 자살율 추이다. 종교별 자살율은 개신교-카톨릭-유대교 순으로 개신교가 월등히 높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우선 개신교는 가톨릭과 유대교에 비해서 응집력이 느슨하다. 유대교와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훨씬 조직의 힘이 강하고 뚜렷하다. 예전과 교회법을 중시하는 면에서도 개신교를 월등히 압도한다. 유대교와 카톨릭에 비해 개신교는 훨씬 개인적이다. 개인의 결단이 구원의 필수요소이고, 신과의 접촉도 사제라는 매개없이 직통으로 가능하고, 경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평신도 각자가 말씀에 대한 이해를 갖고 신 앞으로 나간다. 신과 개인 사이 일대일 관계를 강조하는 개인주의적 성격이 가장 강한 종교가 개신교라는 것이다. 개인의 탄생이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때, 개신교는 근대정신과 부합하는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성향의 개신교도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이해 하는데 있어 중요한 포인트이다. 한국 개신교도들의 자살률만을 따로 떼어 연구한 결과물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의 신앙패턴이 자살율과 상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나는 자살에 대한 전통적 해석과 뒤르겜의 『자살론』을 토대로 자살이라 는 현상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글의 후반부에서는 자살에 대해 유독 거부반응을 보이는 그리스도교의 자살 해석에 대한 반론이 도모될 것이다.  

- 제3시대, 이상철, 원문보기 :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853

 

 

나는 늘 교회가 사회의 마지막 비상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도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안전망은 늘 한계가 있다. 뒤르겜의 주장처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촉발시킨 자살의 증대는 결국 공동체에서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고 교회는 가장 구체적인 형태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공동체가 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교회 공동체의 목적과 목표가 개인의 삶을 지탱하고 그 삶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이고 많은 교회 사역자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