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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참 잘 찾아낸, 행복목욕탕(2016)

행복목욕탕 (湯を沸かすほどの熱い愛 : 물을 끓일 정도의 뜨거운 사랑, 2016) 지금껏 내가 본 일본영화는 대부분 작고 예쁜 소품들이 많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고 예쁜 소품' 같은 영화가 보다 일본 영화스러웠고 다른 장르에 비해 영화로서의 재미가 있었다는 뜻이다. '러브레터', '립반윙클의 신부' 같은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이 그랬고 '안경', '카모메 식당' 같은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들이 그랬다. 침대 옆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내내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영화들이다. 반면 인기드라마의 SP나 말도 안 되는 거대 스케일의 SF 영화들은, 세계 최강의 애니메이션 영화 리스트를 가진 나라치고는 시시하고 참담한 수준이다. 물론 이런 나의 편견의 이유가 표본이 너무 적은 탓도 있을 것이다...

REVIEW/MOVIE 2017.06.30

The Köln Concert

1975년 1월 24일. 밤새 내린 눈은 길위에 질척하게 얼어붙어 번쩍인다. 동쪽 숲에서 시작된 바람은 습기를 머금어 축축하다. 머플러를 단단히 동여보지만 틈새로 스며드는 한기를 막기란 쉽지 않다. 호텔을 나서니 좁은 오거리 길은 만난다. 호텔 앞을 가로지르는 Clever 스트리트를 따라 라인강을 왼편에 두고 걷는다. 차가 많지 않았고 도시는 고요했다. 이정표엔 'Theodor-Heuss-Ring'이라는 낯선 이국의 글자가 적혀 있다. 근처 공원의 이름인지, 아니며 그 공원을 순환하는 도로의 이름인지는 알 길이 없다. 테어도르 호이스 링, 발음이 좋아 몇 번 따라 불러 본다. 근처 아파트의 열린 창문으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아직 서툰 연주라서 곡은 난이도가 높은 마디에서 형편없이 느려진다. 바흐의 골..

REMEMBRANCE 2017.06.30

오후의 그늘

돌이켜 생각해보니, 난 당신에게 그늘이 되고 싶었나보다. 따가운 햇살이 당신의 가늘고 긴 뒷목에 빨갛게 내려 앉을 때 한줄기 바람처럼 서늘한 그늘이고 싶었나보다. 당신이 힘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힘들다'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 손에 든 가방의 무게만큼 가만히 고개를 기대고 숨을 고를 수 있는 든든한 그늘이고 싶었나 보다. 가끔은 거센 파도처럼 마음을 할퀴는 눈물 앞에서 말없이 눈물을 받아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늘이 되고 싶었나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이 나에게 있기를 바랬다. 당신에게 소중한 것 중에 내가 있기를 바랬다. 그 마음이 지나쳐 욕심이 되고, 미련한 욕심이 자라 때론 삐죽삐죽 튀어나온 입술이 되었을 때, 폭신폭신했던 처음의 기억이 온데간데 없고, 바싹 벼린 날이 뜨거운 심장을 헤집어..

REMEMBRANCE 2017.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