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The Köln Concert

mimnesko 2017. 6. 30. 15:14

 

 

1975년 1월 24일.

 

밤새 내린 눈은 길위에 질척하게 얼어붙어 번쩍인다. 동쪽 숲에서 시작된 바람은 습기를 머금어 축축하다. 머플러를 단단히 동여보지만 틈새로 스며드는 한기를 막기란 쉽지 않다. 호텔을 나서니 좁은 오거리 길은 만난다. 호텔 앞을 가로지르는 Clever 스트리트를 따라 라인강을 왼편에 두고 걷는다. 차가 많지 않았고 도시는 고요했다. 이정표엔 'Theodor-Heuss-Ring'이라는 낯선 이국의 글자가 적혀 있다. 근처 공원의 이름인지, 아니며 그 공원을 순환하는 도로의 이름인지는 알 길이 없다.

테어도르 호이스 링, 발음이 좋아 몇 번 따라 불러 본다. 근처 아파트의 열린 창문으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아직 서툰 연주라서 곡은 난이도가 높은 마디에서 형편없이 느려진다. 바흐의 골든베르그 연주곡. 몇 번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골든베르그는 틀림없다. 피아노의 울림이 가슴을 두근하게 했다.

 

 

2016년 7월 24일.

 

뜨거운 태양은 이태원에서 한강진으로 이르는 도로를 벌겋게 달구었다. 미풍조차 없었다. 길은 혼잡했고, 자동차들은 꼭꼭 닫은 창문밖으로 더운 바람을 뿜어냈다. 불과 30여 미터를 걸었을 뿐인데 이미 등줄기가 흠뻑 젖었다. 손에 든 아이스커피 속의 얼음은 빠른 속도로 녹아내렸다. 이어폰을 단단히 귀에 심어 놓고, 미리 동기화해 둔 음악을 듣는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오후 위로 선선한 한줌의 바람처럼 피아노 건반은 타격음이 흘러 내린다. 갑작스런 서늘함에 고개를 둘러 본다. 한강을 오른편에 두고 걷는 길이지만 바람은 없다. 남산의 관목 숲에서 시작된 낮고 서늘한 바람이었나?

 

 

턴테이블을 멈추고, 조심스레 바늘을 들어 올린다.

음악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