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오후의 그늘

mimnesko 2017. 6. 30. 14:41

 

 

돌이켜 생각해보니, 난 당신에게 그늘이 되고 싶었나보다.

따가운 햇살이 당신의 가늘고 긴 뒷목에 빨갛게 내려 앉을 때 한줄기 바람처럼 서늘한 그늘이고 싶었나보다.

당신이 힘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힘들다'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 손에 든 가방의 무게만큼 가만히 고개를 기대고 숨을 고를 수 있는 든든한 그늘이고 싶었나 보다.

가끔은 거센 파도처럼 마음을 할퀴는 눈물 앞에서 말없이 눈물을 받아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늘이 되고 싶었나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이 나에게 있기를 바랬다.

당신에게 소중한 것 중에 내가 있기를 바랬다.

그 마음이 지나쳐 욕심이 되고, 미련한 욕심이 자라 때론 삐죽삐죽 튀어나온 입술이 되었을 때, 폭신폭신했던 처음의 기억이 온데간데 없고, 바싹 벼린 날이 뜨거운 심장을 헤집어 붉은 피가 흐르는 것을 나는 보았다.

 

짧은 경련이 등줄기를 휘감고 지났다.

저 멀리 깃대를 세우고 깃발을 펄럭이면 기어이 내가 찾아내리라는 믿음이 당신에겐 있었나보다.

하지만 벌컥거리는 심장으로 그곳은 너무 멀다.

나는 그늘이 되고 싶었나보다. 그런데,

당신은 꼭 내가 아니어도 되고, 나는 꼭 당신이 아니어도 되나보다.

더운 바람이 시리게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