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누가 죄인인가?

mimnesko 2023. 1. 5. 15:58

우선 이 글은 영화 '영웅'에 대한 리뷰가 아닙니다.

원작 뮤지컬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뮤지컬보다 더욱 영화적으로 잘 해석되었는지, 또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는 순전히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도마(Thomas)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삶을 재조명한 극영화로서만 본 개인의 아쉬움을 짧게 적고 싶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겠지만, 사실 안중근의 삶을 그린 영화가 한 편 더 있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도마 안중근'(2004). 네, 망한 영화입니다.

대본도 망했고 감독의 연출도 망했고 음악도 망했고 촬영도 망했습니다. 심지어 주연을 맡았던 유오성 배우가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주연 자리까지 걷어차고 출연을 결심했던 영화이기에 더욱 가슴 아픕니다. 

 

 

영화 영웅(2022)

 

영화 영웅 스틸이미지

 

2022년에 개봉한 영화가 과거의 망한 영화보다 나은 점은, 우선 견실한 뮤지컬 스크립트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거대한 자본을 아낌없이 투자할 제작사도 있습니다. 뮤지컬을 베이스로 했으니 당연 뛰어난 스코어도 있습니다. 그리고 뮤지컬 배우 '정성화'가 있습니다(비록 전 아직도 무대사고로 엉망진창이었던 '맨 오브 라만차'의 정성화가 떠오릅니다만).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을 일이 거의 없을 안전한 캐스팅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 역에는 수식어가 필요없는 나문희 배우가 무게감을 더합니다. 직접 노래를 부르는 영화다보니 뮤지컬 배우가 더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배우들 모두 엄청난 연습을 했다고 하니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영화 '레미제라블'처럼 뮤지컬의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배우들이 직접 인이어를 착용하고 동시녹음으로 노래를 불렀다는데,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재현하기 위해 후반작업에도 공을 들였다는데, 심지어 뮤지컬엔 없는 새로운 넘버(설희의 '그대 향한 나의 꿈')는 감독이 작사에도 참여했다고 하는데....

 

영화 전반에 걸쳐 감동이 밀려오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건, 영화의 만듦새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실존했던 인물 '안중근'에 대한 우리의 미안함 때문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연출이 더해질수록, 엇갈리는 카메라 동선과 튀는 컷이 더해질수록, 동시라고 했지만 아무리 들어도 후시녹음 같은 사운드가 더해질수록, 굳이 웃기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웃겨 보겠다는 연출자의 호기가 더해질수록 영화는 원작을 떠나, 관객을 떠나 만주 벌판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면 떠나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참 좋았던 건 나문희 배우가 연기한 조 마리아 여사님.

아들의 사형 언도 소식을 듣고 적어 보냈다는 글을 노래로 연기하는 노 배우의 모습은 노련하고 또 대단합니다. 

 

영화 영웅 스틸이미지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영화를 떠나,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으라는 어머니 조 마리아의 말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커다란 울림이 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라는 정의 자체가 혼란한 지금 시대에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때문에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 역시 어리석은 질문처럼 여겨집니다.

누구에게는 정의로운 것이 누구에게는 가혹한 처벌이 되고, 누구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구에게는 말도 안 되는 형식과 절차로 돌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인 검사가 기소하고, 일본인 변호사가 변호하고, 일본인 판사가 판결을 하면 그 결과야 뻔한 일인데, 위의 문장에서 '일본인'을 빼더라도 그닥 별로 다르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을 경험하는 요즘. 어쩌면 국민 개인의 법 감정과 사법의 판결이 1910년 뤼순의 그곳만큼이나 가장 먼 거리로 떨어져 있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변을 이끌어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고 이미 뮤지컬의 탄탄한 대본을 가진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거라면, 적당히 잘 베끼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한 일입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을 만들었다고 대단해할 일도 아닙니다. 스스로가 다시 제대로 된 질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모사가 창작으로 이어지는 법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영화 중 뮤지컬 넘버 '누가 죄인인가?'는 본래의 의미를 떠나, 관객 입장에선 참 적절한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