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달팽이

mimnesko 2015. 7. 5. 23:42

 

 

Sony RX-1

Carl Zeiss T* 35mm F2.0

 

 

어쩌다보니 달팽이가 네 마리나 생겼다. 사실 알(달팽이가 알에서 태어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은 6개를 분양받았는데 막상 부화를 시켜놓고 세어보니 네 마리다. 다른 두 마리의 행적에 대해선 아직도 묘연하다. 나머지 네 마리가 맛있게 냠냠 먹어버렸다는 설도 있는데, 달팽이는 대부분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럼 도대체 두 마리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집을 몰래 빠져나와 먼 여행이라도 떠난게 아닐까? 마치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모래톱에서 바다를 향해 기어가는 꼬마 거북이들처럼, 밤마다 사그락 사그락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서 창틈이며 벽 사이를 기어가는 달팽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봤자 아직 이 동네도 벗어나지 못했겠지만....

 

여튼 네 마리의 달팽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못 신기하다. 소라껍질처럼 생긴 달팽이 집이 조금씩 형태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열심히 계란 껍질을 먹고선 힘차게 등껍질을 만들어내고 있다. 칼슘의 이동인 셈이다. 그리고 달팽이의 피부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해서 뭔가 입으로 우물거리면 금새 머리 뒤로 먹이가 넘어가는 게 보인다. 그런 점에서 대충 먹어 치우고 나선 시치미를 떼는 일이 달팽이들에겐 불가능해 보였다.

 

"방금 전 여기 있던 상추를 못 봤어?"

"글쎄, 본 적 없는데...?"

"....이봐 지금 네 머리 뒤로 넘어가는 그건 상추가 아니고 뭐야?"

"....남의 머리속까지 보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야?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뭐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 키우고 있는 달팽이는 '식용' 달팽이라고 한다.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달팽이의 종류가 무려 2만종(그건 달팽이의 이동속도가 느려서 지역을 크게 못 벗어나기 때문에 지역마다 다른 종류가 생겨서 그렇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애초에 달팽이가 없던 지역에 어떻게 달팽이가 생겨난 걸까요? 역시 감쪽같이 사라진 그 달팽이들은 그런 식으로 어딘가의 불모지를 찾아간 게 아닐까요?)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중 '식용'으로 구분된 건 어떤 종류일까? <동의보감>에선 달팽이를 소개하며 '성이 한랭하고 맛이 짜고, 독이 약간 있으며 '간질'과 '치질'에 좋다고 되어 있다. 즉 허준 할배는 달팽이를 먹어봤단 이야기겠지. 그리고 '소갈'을 멈춘다고 하니 '당뇨병'에도 효능이 있는가 보다. 프랑스에선 에스카르고(escargot)라는 요리가 유명하다고 하니, 나름의 '맛'을 가지고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두 개의 큰 더듬이를 내밀고서 상추를 맛있게 냠냠 먹는 저 녀석들로 요리를 만든다는 것은 도무지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내가 조류를 안 먹는 것처럼, 어쩌면 곧 '복족류'(나사모양의 껍데기를 가지고 있는 7만 5천여 종의 동물)를 안 먹게 될 날도 머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