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어디서 본 것 같은, 정이

mimnesko 2023. 1. 27. 12:19

출처 : 다음영화

* 영화 '정이'에 대한 스포일러는 전혀 없습니다. 아마도...

 

연상호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었고, 감탄했던 작품 역시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던 '사이비'였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그것을 흥행시킨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걸 해낸 감독이라니 기억할만하지 않은가.

 

이후 '부산행'의 성공으로 연상호 감독은 '그림만 잘 그리는 감독'에서 벗어났다.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는 장르영화의 추종자였고 발군의 스토리텔러였다. 나홍진 감독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장르의 개척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설레임도 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부산행의 후편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서울행'과 감독이 VFX의 참맛을 느낀 듯한 '염력'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그 정점은 '반도'에서 찍혔다. 삼천 오백 만을 설레게 한다는 강동원을 데려다 놓고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지 못 했다.

 

이후 연상호 감독의 횡보는 놀랍다. 자신이 잘 하는 작업 방식(애니메이션)을 VFX로 구현하기로 작정을 한 듯 과감하게(동시에 아슬아슬하게) 드라마 시리즈물을 연출하거나 스크립트 작업을 했다. 방법과 괴이는 나름 참신했다. 여전히 '신파'없이는 못 사는 스토리의 결점이 보름달만큼이나 컸지만, 덱스터의 애니메이션은 신뢰할만 했다. 

그 자신감이었을까?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영화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뒤섞은 듯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을 연출했다. 총 6편의 이 시리즈는 감독 자신의 역량의 최대치를 보여준 것 같으나 안타깝게도, 극 중 화살촉과 같이 그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 했다. 심지어 시리즈 마지막 장면은 괴이했다. 난 무조건 이 드라마 시즌2를 갈 거야 외치는 감독의 목소리가 화면 밖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내놓은 밥상은 엉뚱하게 '정이'이다.

 

지옥을 보면서 '사이버 펑크'를 염려했었는데, 그건 애교수준이었다. 지옥의 사이버 펑크가 시각효과의 염력을 획득하면 벌어지는 안드로이드 좀비 쇼가 바로 이런 모습이다. 그 잡탕의 국물에 눈물 한 방울, 가족 한 방울을 넣으면 마법처럼 먹을 만한 수준의 스프가 될 거라는 감독의 기대는 넷플릭스의 홍보력의 날개를 얻어 힘차게 날아올랐으나, 역시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 했다. 

 

영화를 공들여 보고(두 번 봤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다시 보았다.

그래 내가 어디선가 봤다 했더니... 

너무 익숙한 장면이다 했더니...

 

 

- 개인적으론 드라마 데브스(DEVS, 왓챠)와 애플TV 오리지널의 '세브란스'를 추천.

- 사이버펑크는 '염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