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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떠오를 때

mimnesko 2023. 1. 16. 11:14

- 민수기 9:15~23

 

오래 전에 읽은 책 중에 '나의 결정과 하나님의 뜻'(게리 프리슨, 로빈 맥슨 공저, 생명의 말씀사)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습니다. 순전히 그 제목 때문에 손이 갔던 책입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의 뜻'(존 맥아더, 베드로서원)이라는 책도 보게 되었는데, 역시 순전히 그 제목 때문에 손이 갔던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라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은 내가 어떤 일을 하기 원하실까, 하나님은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길 원하실까, 하나님은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길 원하실까...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깨끗하고 선명하게 그리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짠, 하고 나타나셔서 "나는 네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 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과연 우리는 보다 선명하게 의심할 여지 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까요? 

만약 그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이나 계획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리키고 나의 가치나 목표와 전혀 일치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내가 들은 것, 내가 목격한 것을 오히려 의심하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리가 없어! 하나님은 누구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인데 나에게 그렇게 요구하실 리가 없어!"라며 항변하지는 않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 총 9절의 말씀 속에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지켜)"라는 표현은 무려 8번이나 등장합니다. 광야의 성막은 구름이 떠오를 때 전진하고 구름이 내려앉을 때 그 이동을 멈췄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성경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이뤄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려 8번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그것에 반대되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고 힘주어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구름의 앉고 떠오름이 그들의 경험과 전혀 다를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저히 일어나기 어려운 새벽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친절한 스케줄 안내가 없었기에, 도대체 언제 저 구름이 앉고 떠오르는지를 종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흘 길을 걸어 간신히 구름이 내려앉았는데, 10분 만에 다시 둥실 떠올랐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론 선명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운가, 싶기도 하지만 과연 지금 내 삶 속에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과연 희미한가 생각하게 됩니다. 틀림없이 내 속에 하나님의 성전에선 구름이 떠오르고 내려앉기를 반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견고한 자아의 생각들이 그 선명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구름이 떠오른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무자비하실 리가 없잖아. 아니 여기서 멈춘다고? 여기서?" 9절의 말씀 중 무려 8번이나 반복되었던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라는 성겸의 표현 속에 그들이 가졌을 고민, 의심, 복잡한 생각과 결과들, 자신들의 경험과 반대되는 결정들이 가득 담겨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 속 구름이 둥실 떠오를 때, 당신은 흔쾌히 일어설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