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困而不學

mimnesko 2016. 11. 23. 17:16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곤이불학, 민사위하의

 

논어에 나오는 이 한 구절에 오랫동안 눈이 멈췄다. 마치 타인이 내 삶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부끄러움도 들었다.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라 말했다. 나로서는 요령부득의 일이라 '배워서 아는' 수준이라도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실제의 삶은 그 마저도 순탄치 않다. '곤경이 처하고 나서야 배우는'(困而學之) 수준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성경은 '고난'을 통해서 성장하는 믿음을 이야기한다.

'환난'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character, 메시지 번역)을 낳는다. 즉 고난을 통해서 한 사람의 온전한 인격과 품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믿음의 조상들의 삶은 고난의 조상들의 삶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나의 삶을 돌아보면 '고난'을 통해서도 배우기는 커녕 여전히 어리석고 무모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악순환이다. 광화문 광장에 서서 촛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외치지만 그 함성은 화살처럼 다시 내 몸 어딘가에 날카롭게 파고 든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구나.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겁함의 내용은 같구나, 하는 자조에 파르르 온 몸이 떨린다.

 

성경은 '환난'이 끝내 '소망'을 이뤄간다고 권면한다.

나는 오늘 나에게 그 소망의 작은 불씨가 있기를 바란다. 뻔뻔하고 가증한 나조차에게도 그런 작은 불씨와 온기가 있어주기를 바란다. '고난'은 어른들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회초리, 라는 C.S 루이스의 말이 하루종일 가슴 언저리를 뻐근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