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할매국밥

mimnesko 2016. 2. 14. 02:00

 

 

 

좀처럼 나는 부산과 인연이 없었다. 

20여년 전, 맥도날드조차 하나 없던 시절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밤기차에서 내려본 것 말고는 부산을 딱히 경험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2014년 초가을에 당시 맡은 일 때문에 부산엘 내려 가게 되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를 봤고, 태어나 처음으로 여름이면 해변가득 세워둔 파라솔로 정작 모래가 보이지 않던 해운대의 바다를 봤다. 부산의 길은 혼잡했고 아파트가 높았다.

동서고가를 타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일은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도 늘 아슬아슬한 좌회전과 우회전의 연속이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안내음성이 '10시 방향 좌회전'이었다. 보통의 사거리와는 전혀 다른 갈림길이 눈앞에 있었다. 재빨리 머리속에 시계를 그려서 10시 어림쯤에 길을 찾아본다. 문제는 좌회전 방향에는 두 개의 갈림길이 있었고 그 중 하나는 9시 반쯤에 또 다른 하나는 11시 쯤에 있었다는 것이다. 네비게이션의 안내가 말하는 '10시 방향'에는 길 대신 세월을 고스란히 겪어낸 3층짜리 노쇄한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누렇게 변색된 아이보리색은 흡사 그릇 옆에 말라버린 콘크림 스프의 빛깔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부산은 도심과 부심의 경계가 모호했다. 그나마 센텀시티나 해운대 근처가 서울에서 오래 산 사람에겐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부산의 오랜 건물과 거리들이 매력적이었다. 유흥가의 요란한 조명으로 번쩍이는 골목을 따라 들어서면 모텔들이 줄지어 있고 그 뒤에 바로 대형 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 주변에는 낮은 빌라 건물이 조밀하게 이어져 있고 느닷없이 고층의 아파트가 떡하니 나타나는 식이다. 아파트와 빌라, 그리고 교회에서 유흥가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시장거리가 자리를 잡았다. 끊임없이 차들이 교차하고 좁은 골목을 더욱 좁게하는 주차 차량 사이로 사이드 미러를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지나가야 하지만, 그게 딱히 어려움이거나 불편함으로 느껴지지 않는 듯 했다.아니 그 또한 편견일 수 있다. 낯선 도시를 경험할 때 우리의 익숙한 습관은 쉽게 편견이 된다. 그 편견 중 하나가 '돼지국밥'이다. 난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로 돼지국밥을 싫어한다.

 

대신 부산에선 해운대 앞에 자리잡은 할매국밥에서 빨간 고추가루 국물의 소고기 국밥을 찾는다. 

해운대 버스 종점 앞에는 네다섯의 국밥집이 있다. 대부분 돼지국밥을 팔거나 메뉴에 넣어두는 모양인데 할매국밥집엔 돼지국밥이 없다. 한 그릇에 5천원도 안 되는 돼지국밥과 선지를 넣은 해장국, 수육 정도를 판다. 가게 안에는 다녀간 여러 유명한 사람들의 사인을 붙여 두었다. 다들 맛있다는 말들인데, 사인도 글씨도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사인을 남긴 사람이 누구인지도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찬사와 감탄 아래에서 나는 소고기국밥을 먹는다. 밥을 말아 먹는다. 하루살이의 거나한 저녁밥상처럼 귀하고 맛있게 먹는다.

그래봐야 5천원도 안 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