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문 듣고 찾아 간 메밀국수집

mimnesko 2015. 7. 7. 23:40

살고 있는 곳이 북촌, 서촌, 부암동과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아무래도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히 주말이면 상황이 좀 더 심각해져서 도로 주변에는 온통 대형 관광버스 들이 무턱대고 주차를 하는 탓에 평일 출퇴근길만큼이나 혼잡해져 버린다.

근처 음식점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꽤 괜찮았던 식당(아무래도 동네다 보니까 자주 가게 되죠)은 금새 소문이 나서 다음에 찾아가면 앉을 자리조차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게다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맛도 금새 바뀌어 버린다. 얼마 전의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간신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주문한 음식을 먹다 보면, "음...?"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뭔가 잔뜩 기대한 얼굴로 앉은 사람들이 음식이 나올 때마다 환호를 지르며 각자 사진기나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촬영을 하기가 바쁘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맛인데 연신 '맛있다!'를 외치면서 정작 음식은 절반 정도씩 남기고 자리를 일어선다. 이래서야 도저히 끼니로서의 밥의 역할을 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고백하건데 얼마 전 속초의 '그리운 보리밥' 집을 방문했을 때에도 나 역시 '관광객'의 입장이 되어 연신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사실 큰 기대없이 방문했던(혹시 관계자분이 보신다면 죄송합니다) 곳이었는데 깜짝 놀랄만큼 맛있었기 때문에 '기록'의 차원에서 남긴 글이었는데 용케 이 숨겨진 블로그의 글을 본 지인들의 '약도를 보내달라'는 메시지가 적지 않아서 뭔가 조금 빗나간 기분이 되고 말았다. 사실 이런 괜찮은 집들은 내 수첩 어딘가에만 존재했으면 하는 나쁜 속내(역시 관계자분들이 보신다면 죄송합니다)가 있기 때문이다.

동네 마실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찾아갔는데 갑작스레 손님이 많아져서 앉을 자리도 찾기 힘들어지고 심지어 줄을 서서 기다리기까지 해야한다면 정말 낭패다. 게다가 음식의 맛조차 미묘하게 변해버린다면,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이 억울해질 것만 같았다.

 

합정동 근처에 있던 캐쥬얼한 덮밥집이 그랬다. 당시 사무실이 근처였기 때문에 점심이면 슬슬 걸어가서 맛있는 연어 덮밥을 먹곤 했던 곳이다. 당시도 점심 단골이 꽤 있긴 했지만 자리가 없을 정도는 아니었고, 일본 어느 요리 학원에서 일식을 배웠다는 주방장의 자부심이나 주인의 푸념같은 이야기도 가끔 들을 수 있어서 점심식사가 꽤 즐거웠던 곳이었는데, 어느새 이곳은 딱히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30분 넘게 줄을 서야 하는 곳으로 바뀌어 버렸다. 오랜만에 방문했다가 3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가게 크기는 그대로였는데 아르바이트가 두 명이나 되었고, 주인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울 만큼 바빠 보였다. 그저 간략한 눈인사 정도("이거 굉장한데요", "푸념같은 건 할 시간도 없답니다! 정말 바빠요!")만 나누고 돌아왔다. 그 후로 가끔 근처를 지날 때에도 늘 10명 정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예전의 즐겁던 점심시간은 멀리멀리 사라져버린 기분이 들어 우울해졌다.

 

반면, 사람들의 요란한 소문을 듣고 방문했다가 크게 후회한 식당도 부지기수이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메밀국수(소바)집도 그랬다. 앞서 적은 이런저런 이유 탓에 앞으로 식당 이름이나 위치 따위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기 때문에 그냥 '소문 듣고 찾아간 메밀국수집'정도로만 적을까 한다. 소바라면 나름 일가견이 있다는 주위 지인들이 칭찬해마지 않던 곳이라서 마침 근처의 일을 마치고 찾아갔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혼란스러웠다. 파는 메뉴가 맥락없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딱히 소바를 먹지 않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한식 메뉴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그러다보니 원래 소바가 유명한 집이라기 보단, 이런 저런 메뉴를 파는 한식집이었다가 우연히 메밀국수를 삶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메뉴로 넣었다,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소바를 먹으러 간 길이었는까 소바를 주문했고, 주문한 메뉴가 나왔고(깊은 한숨), 쯔유국물이 나왔다(깊은 한숨). 테이블에는 김과 고추냉이, 그리고 갈아놓은 무(깊은 한숨)가 이미 셋팅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재료를 담은 용기 속은 마치 카오스와도 같았다. 고추냉이 용기에는 갈은 무가 뚝뚝 떨어져 있었고, 갈은 무의 용기 속에는 김조각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파삭함은 고사하고 빛깔조차 멍청해진 김(마치 음식재료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김가루..같은)의 용기 속은 나머지 재료들이 몽땅 들어가 있었다. 쯔유 국물도 미지근해서 차가운 모리소바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이만저만한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일단 요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메밀국수(와 흡사하게 생긴 외계의 음식)를 몇 젓가락 먹다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절반 가까이를 남기고 일어섰다. 하지만, 직원 누구도 그 이유를 묻거나 하지 않았다. 시험삼아 '갈은 무가 거의 없는데, 좀 담아주실 수 있나요?'라고 요청해봤지만 보기좋게 묵살당했다. 도대체 이런 소바를 극찬한 사람들의 인내력과 포용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 정도의 수준에서 '맛있다!'라고 해야만 원만한 사회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도 참 가슴 아픈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소문 듣고 찾아 갔던 강남의 어느 평양냉면 집에서도 비슷한 한숨을 쉬었던 적이 있다. 결단코 내 입맛이 '미식'의 경지에 있다거나 유난히 까다롭다거나 한 게 아니다. 적어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맛있게 먹어주는 내 입맛 때문에 오히려 기준이 낮다,라는 말을 훨씬 더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 내 미각수준에도 이 소바와 그 냉면은 용서할 수가 없다. 맛도 가격도 서비스도, 그리고 대충 상상되는 위생상태도 모두 낙제점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동네에 간신히 찾은 맛집들이 너무 번창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 서너 군데가 프랜차이즈의 깊은 강을 건너가 버렸지만, 아무쪼록 내 수첩 귀퉁이에 남겨진 곳들은 지금처럼 꼭꼭 숨어서 지금처럼 맛난 음식들을 척척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시겠지만....

 

 

 

* 부암동의 맛집들은 오히려 잔뜩 올라버린 월세를 감당 못하고 아예 장사를 접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 버렸다. 아직 아슬아슬하게 몇 군데가 남아있긴 하지만, 전해 듣는 이야기에 따르면 전망이 밝지 않다. 어느날 갑자기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사라져 버리기 전에 자주 들러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