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부상(負傷)

mimnesko 2015. 5. 18. 03:20

 

지난 12월부터 5월까지 5개월간 나름 꾸준히 운동을 했다. 무엇보다 3일 이상 운동을 쉬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업무 중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운동시간은 45분 내외. 양보다는 질이 중요한 상황. 처음 PT로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45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유산소 서킷이 중심이 되었다. 런지, 사이드 스텝, 제자리 달리기, 버핏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설레 설레하는 서킷 중심으로 2개월 정도를 운동하며 기초체력을 끌어 올리려 노력했다.

 

이후 유산소와 함께 웨이트를 시작한 뒤로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부상에 대해 나름의 대비를 했다. 충분히 웜업을 하고 운동 전 스트레칭 역시 늘 하던 순서대로 빠짐없이 반복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상체나 하체 운동 후에 뻐근함이나 근육통은 늘 있었지만, 부상이라고 할 정도의 고통을 겪은 적이 없었던 탓에 스트레칭은 주로 근육통이 발생하는 부위가 위주가 되었다.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런데 정작 부상은 0.1초만에 일어났다.

늘 하던 프로그램으로 바벨 스쿼트 3세트, 데드리프트 3세트, 그리고 바벨 로우 3세트를 진행하던 중이었다(지나고 생각해보니 이게 참 엉망인 순서다. 세 운동이 모두 허리(등)에 부담을 주는 운동들인데 강도를 높인다고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했으니, 허리에 부상위험이 생기는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바벨 로우 마지막 세트에 5kg를 더 얹고 바벨을 들어올리는 순간 허리 끝에서 '번쩍'하는 느낌이 왔다. 동시에 온 몸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일단 바벨을 내려 놓고 천천히 걷기로 했다. 우선은 이게 잠시 지나가는 통증이길 기대하는 마음에 마무리 운동까지 두 세트를 반복하고 나서, 통증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걸 보고 어쩌면 꽤 심각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부상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된다.

 

묵직한 통증은 샤워 후에 내내 등을 불편하게 했다. 약국에서 파스를 사서 붙여봤지만(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건 오히려 안 좋다. 차라리 아이싱 스프레이를 뿌렸어야 했다) 통증은 점점 커져만 갔고, 의자에 앉고 서는 것조차 꽤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래 전 봤던 슬램덩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백호가 등에 부상을 입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애써 참고 경기를 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교체를 요청하던 장면. 아마 이런 느낌이었겠지?

 

 

 

 

다음 날 아침, 생활 속에서 등의 근육과 힘 없이 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머리를 감는 일도, 세수하는 일도, 의자에 앉고 서는 일도, 심지어 양말 하나 신는 것조차 튼튼한 등 근육의 도움 없이는 누군가의 손이 필요한 일이 되어 버린다.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바로 다른 사람의 피해를 줄이는 일인 셈이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사 근처의 한의원을 찾았다. 심드렁한 간호사는 허리가 아파서 왔다는 말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일단 진료실의 침대에 누우라며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 주었다. 저릿한 허리 통증을 참으며 간신히 옷을 갈아입고 기어 오르다시피 해서 침대에 엎드려 침을 맞았다.

 

이번 일을 겪으며 느낀 점이 있다면 우선 운동 자체에 대한 일정한 분량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독일의 어느 철학자는 "나는 책으로 수영의 모든 것을 배웠다"라고 말하며 지식 자체가 가진 위험성을 경고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기본 정도는 알아야 부상을 피할 수 있고, 효율적인 운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운동(홈트레이닝이든 피트니스에서 하는 웨이트나 서킷이든)은 인터넷의 정보를 너무 믿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중력운동의 기본이라는 '스쿼트'만 검색해 봐도 그 걸 알 수 있다. 저마다 스쿼트의 바른 자세를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기준으로 '바르다'라고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쏙 빠진 경우가 많다. 가령 그 '바르다'는 기준이 운동 중 부상을 피할 수 있고, 필요한 부위에 적절한 자극을 줄 수 있다, 라는 것이라면 의외로 그 '바르다' 스펙트럼이 꽤 넓다는 것에 당황할 수도 있다. 발의 보폭이나 발끝의 방향, 힙어드레스의 각도며 시선 처리 등 블로그나 사이트마다 미세하게 조금씩 다르고, A라는 사람의 말이 B라는 블로그에서 정면으로 반박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바르고, 저것도 바르다는 불가지론 속에서 부상의 위험은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다. 실제로 내가 했던 등 운동 프로그램은 사실 고중량의 운동을 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운동경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적합한 구성이었다. 불과 2개월 남짓한 웨이트로 아직 등 근육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나로서는 오히려 적은 무게로 주동근에게 지속적으로 자극을 주는 편이 저 좋았다. 갑자기 무게가 늘어나거나 연속된 등 근육의 피로는 오히려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 그대로 '온 몸으로' 배운 셈이다.

 

다행히 집 근처 좋은 한의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은 덕에 등과 허리는 많이 편해졌다.

여전히 혼잡한 버스나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부딪힐 때 조심스럽고, 뛰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예전 일상의 수월함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은 운동에 도움이 될 책을 한 권 구입했다. 천천히 유산소로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 전, 책부터 꼼꼼히 읽어서 두번째 부상의 가능성을 되도록 낮추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내가 할 만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