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BARR 92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 마태복음 11:1~10 제가 아침에 매일성경의 순서를 따라 말씀 묵상을 나누는 이 메뉴의 이름이 미드바르(midbarr), 즉 '광야'란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뜰'을 뜻하는 이 '광야'라는 단어는 시어(詩語)나 노랫말에 사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의외로 실생활에선 자주 접하기 어렵습니다. 황야, 벌판, 들판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입니다. 그런데 '광야'는 그 어감 상 '황야'와 다르고 또 '벌판'과도 다릅니다. 단순히 너른 땅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어떤 함의(含意)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라고 묻습니다. 그저 단순히 '너른 땅', '척박하고 메마른 땅'으로 갔는지를 묻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밖에 만날 수..

MIDBARR 2023.02.14

검(儉)을 주러 왔노라

- 마태복음 10:34~42 "너 같은 것들은 가족이 제일 큰 가해자인데, 왜들 딴 데 와서 따질까?" 최근 화제가 되었던 넷플릭스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고등학교 시절 학교 폭력의 주동자였던 연진이가 던진 한 마디 말입니다. 이 서슬퍼런 한 마디 말이 동은이에게 날아들 때, 그 속에 담긴 한 줌의 사실이 주인공뿐 아니라 시청자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일말의 반성도 자책도 없는 가해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실제로 학교 폭력 등의 피해자들을 무너지게 하는 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2차 가해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믿었던 만큼 고통은 배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그들을 버티게 하는 마지막 힘이 무너질 때,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본..

MIDBARR 2023.02.13

보냄을 받았다

- 마태복음 10:1~15 처음 아이가 두 바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때, 흔히 보는 익숙한 풍경이 있습니다. 드디어 보조 바퀴를 떼어 낸 아이는 잔뜩 긴장해 있습니다. 자전거 페달에 발을 올려 놓고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부모가 자전거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지 계속 확인합니다. "손 놓으면 안 돼요!"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앞이나 봐." 아이는 부모의 의미심장한 웃음이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다시 한 번 다짐을 하고 페달을 디딘 발에 힘을 줘 봅니다. 아직 균형을 잡지 못한 두 바퀴가 크게 휘청입니다. 아이는 황급하게 뒤를 돌아봅니다. "앞을 보라니까! 아빠가 잡고 있잖아~" 부모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아이가 안심하도록 합니다. 두어 번 페달이 돌아가자 자전거는 금새 균형을 잡습니다. 자전거..

MIDBARR 2023.02.10

그가 오신 이유

- 마태복음 9:27~38 늦은 저녁, 서울 근교의 기도원을 방문하기 위해 혼자 산길을 올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가 기도원까지 이어져 있었고 드문 드문 가로등이 밝혀져 있긴 했지만 그래도 주위가 깜깜해진 시간에 인적 없는 산길을 올라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특히 드문한 가로등의 노란 빛 아래 있다가 그 경계를 벗어나 컴컴한 길로 접어 들 때면 저절로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올 정도였습니다. 약 30분 남짓한 그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 그 거뭇한 길 사이로 무언가 희끗한 게 보였습니다. 애써 눈길을 피하려 애썼지만, 심장은 가빠오고 저절로 눈은 그 정체모를 것에 집중이 되었습니다. '사람인가?..

MIDBARR 2023.02.09

당인불양(當仁不讓)

- 마태복음 9:1~13 명나라 말 청나라 초, 고염무라는 사람은 명나라가 망하자 비밀조직을 결성해서 반청 운동을 벌이다가 끝내 실패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청나라 조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평생을 저술로 마쳤습니다. 그의 대표작이 바로 '일지록'(日知錄)입니다. 그 책에서 고염무는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고 주장합니다. 말 그대로 "천하가 번성하고 쇠퇴하는 데는 논에 농사를 짓고 산에서 나무하는 보통 사람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사고로 많은 사람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 먹고 놀러간 사람들이 사고로 죽은 것까지 우리가 애도해야 하는 거냐"라는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자발적으로 '피해자'가 되는 ..

MIDBARR 2023.02.07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 마태복음 8:23~34 깊은 바닷 속을 들여다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낚시배를 빌려 바다 낚시를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뭍에서 떠난 통통배는 약 20여 분 간 물살을 가르고 바다 가운데로 향했습니다. 점점 멀어지는 뭍을 바라보며, 그리고 소금기 가득한 바람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는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배가 엔진을 끄고 닻을 내렸습니다. 날씨는 맑았고 바다의 너울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연신 배를 때리는 파도에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배는 위 아래로, 때론 조금 불안한 소리를 내며 양 옆으로 흔들거렸습니다. 배의 선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사람들에게 간단..

MIDBARR 2023.02.06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 마태복음 7:21~29 학부 시절, 구약신학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십계명'(출 20:1~17)을 설명하시며 소위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조차 간과하기 쉬운 부분들을 지적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중 세 번째 계명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 20:7) 이 본문에선 '망령(妄靈)되이 부르다'라는 표현이 다양한 해석을 만들곤 했습니다. '망령되다'의 사전적 의미는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과 행동이 주책없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과 행동이 주책없이' 부르지 말라, 라는 뜻이 됩니다. 한자의 뜻을 해석해 보아도 딱히 감..

MIDBARR 2023.02.03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마태복음 7:13~20 요즘처럼 말이 풍성한 시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유튜브 채널 몇 개만 보더라도 새삼 감탄할 정도의 언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이 분야의 최고는 TV홈쇼핑 채널의 쇼호스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연히 채널을 넘기다가 홈쇼핑 채널을 보게 되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아니 그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만해도 살면서 한 번도 필요성을 느껴본 적조차 없었는데... 쇼호스트들의 유려한 말솜씨에 휘감기다보면 어느새 '저건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야말로 마력 같은 힘이지요. '말'을 잘 하는 걸로는 목회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듣다 보면 정신이 어질해질 정도로 말을 잘하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목회자들과 사석에서 ..

MIDBARR 2023.02.02

그 헤아림으로

- 마태복음 7:1~12 만약 오늘 묵상을 새벽 설교나 강해 설교의 본문으로 정했다면, 틀림없이 그 강조점은 7절에 맞춰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문장의 기승전결 구조처럼 마태복음 7장의 전반부는 7절 말씀을 향해 달려가는 완만한 상승곡선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대단원의 결론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는 12절의 말씀에 놓입니다. 비록 신학자 칼빈은 이 결론이 앞의 말씀, 즉 7장 1~11절까지와는 큰 관련이 없이 서술된 단독적인 도덕률이라고 보기도 했지만 접속사 '그러므로(헬 oun, 영어로는 then, therefore..

MIDBARR 2023.02.01

염려하지 말라

- 마태복음 6:19~34 고대 로마의 작가 '히기누스'가 쓴 우화가 있습니다. 염려의 신 '쿠라(Cura)'가 어느 날 강가를 건너다 진흙을 발견하고 그 진흙을 떼어 형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주피터 신에게 자신이 만든 진흙 형상에 혼을 불어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주피터는 흔쾌히 쿠라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쿠라가 그 형상에 이름을 붙이려고 하자 주피터가 자신이 혼을 불어넣었으므로 자신이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고의 신(神)이라기엔 참 속좁은 모습입니다. 쿠라는 자신이 빚은 점토 형상이니 자신이 이름을 붙이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둘이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텔루스, 즉 대지의 신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원 재료(점토)의 제공자가 자신이니 자신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

MIDBARR 202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