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12

병맛을 원해? 그래 어디 끝까지 달려보자!

영화관에서 팝콘 좀 먹어봤다는 사람들이 2022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았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제목만 들어서는 도무지 무슨 영화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고,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뭔가 굉장하고 동시에 산만한 영화"라는 식의 신통찮은 답변만 돌아오던 영화. 그래서 포스터 속 양자경의 멋진 포즈만 보고선, "아, 새로나온 홍콩 영화구나"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가 95회 아카데미에서 무려 7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덕분에 대작을 미처 몰라 본 범인들의 참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수상내역도 놀랍다. 작품상, 감독상(다니엘스, 감독이 2명의 다니엘이라서), 여우주연상(양자경), 여우조연상(제이미 리 커티스), 남우조연상(키호 이 콴), 각본상(다니..

REVIEW/MOVIE 2023.03.17

이 시대의 언론을 반추하다, 스포트라이트

-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미국 보스턴의 유력 언론지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 취재팀, 스포트라이트가 2001년 보도하여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던 미국 내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 성범죄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보스턴 클로브의 새로운 편집장으로 부임한 마티 배런(Marty Baron, 리브 슈라이버 扮)은 '존 게오건'(John Joseph Geoghan)이란 신부가 보스턴 내 여러 교구를 옮겨다니며 아동 성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정황이 있었는데도, 피해자와의 합의했다는 이유로 서둘러 사건이 종결되고 이를 보도하는 기사도 단신에 불과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당시 가톨릭 교회, 특히 보스턴 교구를 맡고 있던 '버나드 로(Bernard Francis L..

REVIEW/MOVIE 2023.02.17

이 꼴이 날 줄 알았던 영화, 교섭

영국의 극작가인 버나드 쇼는 이런 묘비명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사실 버나드 쇼는 화장을 하고 그 재를 뿌렸기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는 묘비 같은 건 없다. 늘 그랬듯이 그의 재기발랄한 입담이 사후까지 전해졌던 게 아닐까?). 언젠가, 내가 이 꼴이 날 줄 알았어!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영화 '교섭'을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100억 원이 넘게 투자된 영화. 요르단 로케이션으로 메마르고 광활한 광야를 담아낸 영화. 황정민과 현빈이라는 핫한 두 배우의 투샷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도대체 왜 '이 꼴'이 나버린 걸까? 2007년 샘물교회 단기선교팀 피랍 사건 잘 알..

REVIEW/MOVIE 2023.02.09

베네딕토 16세의 선종, 그리고 영화 '두 교황'

2022년의 마지막 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종했습니다. 2013년 2월, 그는 생존한 교황으로서 교황직에서 사임한 가톨릭 역사 상 두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교황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9년 동안 자연스럽게(?)두 명의 교황이 가톨릭에 존재했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업무는 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맡고 있었지만, 생존한 전임 교황의 권위는 후임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5일 현 교황에 의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가 집례되었습니다. 이 역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을 가득 메운 조문객들은 전임 교황을 추모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계 뉴스의 단신으로 소개되던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영화 '두 교황'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열연한 안소..

REVIEW/MOVIE 2023.01.06

영리한 영화, 아웃핏(The Oupfit, 2022)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되며 '예상을 뛰어넘는 수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아웃핏'(The Outfit). 105분의 러닝타임 동안 무대가 되는 양복점을 벗어나지 않는 구성 덕분에 영화라기보단 오히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연극처럼 느껴지는 독특한 영화. 영리한 연출자는 시공간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한 영화의 장점을 버린 대신 '폐소공포' claustrophobia가 느껴질 정도의 서스펜스를 손에 넣었다. 그레이엄 무어(Graham Moore)의 필모그래피는 간소하다. 앨런 튜링(Alan M. Turing)의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5)'으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면서 데뷔 첫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쳤..

REVIEW/MOVIE 2023.01.04

제목을 참 잘 찾아낸, 행복목욕탕(2016)

행복목욕탕 (湯を沸かすほどの熱い愛 : 물을 끓일 정도의 뜨거운 사랑, 2016) 지금껏 내가 본 일본영화는 대부분 작고 예쁜 소품들이 많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고 예쁜 소품' 같은 영화가 보다 일본 영화스러웠고 다른 장르에 비해 영화로서의 재미가 있었다는 뜻이다. '러브레터', '립반윙클의 신부' 같은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이 그랬고 '안경', '카모메 식당' 같은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들이 그랬다. 침대 옆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내내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영화들이다. 반면 인기드라마의 SP나 말도 안 되는 거대 스케일의 SF 영화들은, 세계 최강의 애니메이션 영화 리스트를 가진 나라치고는 시시하고 참담한 수준이다. 물론 이런 나의 편견의 이유가 표본이 너무 적은 탓도 있을 것이다...

REVIEW/MOVIE 2017.06.30

단팥 인생 이야기, 앙(あん)

벗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오후, 도라야끼를 굽는 작은 가게에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기웃거린다. 가게 문밖에 붙여 둔 구인 광고를 가리키며 80세가 넘은 노인이지만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겠느냐며 묻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600엔의 시급조차 절반이면 충분하다고 사정하는 할머니를 가게 주인은 노인이 감당하기엔 '고된 일'이라며 어렵사리 돌려 세운다. 그냥 하나 가져가라고 할머니 손에 들려 준 도라야끼 하나가 결국 다시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 된다. 영화는 성급한 생략없이, 마치 계단을 하나씩 짚어가며 오르듯 시간을 기록해 간다. 숨겨진 장인의 손에서 빚어지는 감동의 '맛'과 젊은 사장의 패기와 열정으로 뭔가 '아름다운' 결말로 흐르거나, 주인공의 애틋한 사연이 슬쩍 내비치며 손에 닿을 수 ..

REVIEW/MOVIE 2015.12.23

슈퍼배드 (Despicable me, 2010)

최근에 미니언즈(Minions)의 열풍에 일루미네이션의 원 시리즈(이자 최초의 에니메이션이었고, 그나마 흥행에 선전을 해서 이런 스핀오프마저 만들게 해주었던)였던 '슈퍼배드'가 자연스럽게 조명을 받고 있다. 2010년과 2013년 나란히 미국의 독립기념일(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추석특집)에 개봉했던 슈퍼배드는 원래 카피라이트였던 "Super Bad, Super Dad, Despicable me"에서 'Super Bad'만 홀랑 따온 건데, 잘 알려져 있듯 영화의 원제는 Despicable me(악랄한 나, 정도의 의미?)이다. 슈퍼배드는 20세기 폭스사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던 크리스 멜리단드리가 2007년 독립해서 설립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첫 작품이었다. 피에르 꼬팽과 크리스 리노드가 만들어 낸 ..

REVIEW/MOVIE 2015.08.15

[HBO] True Detective

영화 '제인 에어'는 아무런 기대 없이 봤다가 깜짝 놀랐던 영화였다. 이미 잘 알려진 텍스트를 영상으로 옮기는 일은 생각보나 꽤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1990년대 초반의 일이지만,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을 맡았던 '후크'를 보았을 때, 나는 영화화, 라는 단어가 가진 광범위한 폭력의 실체를 알알이 경험했다. "세상에 40살 먹은 피터팬이라니!!" 망할 놈의 스필버그를 외치며 충무로 대한극장을 박차고 나왔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이나 '위대한 개츠비', '반지의 제왕'이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등의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것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좁쌀만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마다의 상상력이 점령한 공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획일..

REVIEW/MOVIE 2015.07.29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2014)

사실 전편 '퍼스트 어밴저스 : 캡틴 아메리카'(2011)가 적잖은 실망이었기 때문에, 속편에 대한 기대가 많지 않았던게 솔직한 마음. 무엇보다 히어로 무비는 가끔 잊을 때면 한 편씩 나오곤 하는 어벤저스 정도면 적당하지 않은가? 게다가 거긴 헐크도 있고, 아이언맨도 있으니까. 게다가 아무리 존재감 없던 1편이었다고 해도 스핀오프나 속편이 날려버린 1편의 기쁨이 어디 하나 둘이었던가! 이 부분에 대해선 이미 빅뱅이론의 레너드와 라지가 명쾌하게 정리해 준 바 있다. 다만 한 가지 기대가 있었다면 엉뚱하게도 '헬리캐리어'라는 무시무시한 비행기의 등장 정도였다. 이미 배틀십에서 대규모의 우주선을 자유자재로 바닷물에 집어 넣던 ILM의 기술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어밴저스에서 잠깐 위용을 드러냈던 핼리케리어를 제..

REVIEW/MOVIE 2015.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