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단팥 인생 이야기, 앙(あん)

mimnesko 2015. 12. 23. 02:37

 

 

벗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오후, 도라야끼를 굽는 작은 가게에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기웃거린다. 가게 문밖에 붙여 둔 구인 광고를 가리키며 80세가 넘은 노인이지만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겠느냐며 묻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600엔의 시급조차 절반이면 충분하다고 사정하는 할머니를 가게 주인은 노인이 감당하기엔 '고된 일'이라며 어렵사리 돌려 세운다. 그냥 하나 가져가라고 할머니 손에 들려 준 도라야끼 하나가 결국 다시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 된다.

 

영화는 성급한 생략없이, 마치 계단을 하나씩 짚어가며 오르듯 시간을 기록해 간다. 숨겨진 장인의 손에서 빚어지는 감동의 '맛'과 젊은 사장의 패기와 열정으로 뭔가 '아름다운' 결말로 흐르거나, 주인공의 애틋한 사연이 슬쩍 내비치며 손에 닿을 수 없는 애잔함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싶을 즈음, 영화는 돌연 전혀 다른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장면들이 엄청난 반전까지는 아니었지만, 뭔가 예리하게 클리세를 비켜간 듯한 서늘한 느낌을 주었다.

 

 

 

 

 

그 이면에는 원작의 힘이 있었고, 그리고 감독의 힘이 있었다.

내가 가와세 나오미, 라는 감독을 알게 된 것은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한일 합작영화이기도 했던 이 영화는 그 독특한 포스터만큼이나 마음을 확 잡아당겼던 영화였다. 마치 한 편의 다큐를 보는 듯한(실제로도 페이크 다큐이다) 섬세한 연출과 흐름은 장건재 감독의 힘에서도 기인했겠지만, 이미 자신의 첫번째 장편으로 칸에서 황금촬영상을 거머쥐었던 가와세 나오미라는 프로듀서의 공력을 무시할 수가 없는 영화였다.

 

소설가가 원고지 위에서 자신의 성을 쌓아간다면, 영화감독은 카메라의 뷰파인더, 혹은 작은 모니터로 자신만의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리게 된다. 가와세 나오미는 그 작은 모니터를 통해, 마치 시인이 은유와 직유로 세상을 다루어 가는 것처럼, 세상을 낱낱이 분해한 다음에 다신 조합하는 비범함을 가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 단팥과 도라야끼는 명확하게 주인공의 역할을 잘 감당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명확하게 단팥이다. 도리야끼는 일본의 전통 단팥빵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팥이 주인공이다. 단팥을 감싼 핫케익을 닮은 빵은 단팥의 단맛을 더욱 도드라지게도 하고, 잘게 나뉘어 섞여서 입속을 풍요롭게 하는 조연의 역할을 한다. 빵을 만드는 일은 훈련과 반복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단팥을 제대로 만드는 일에는 인생이 필요하다, 는 것이 영화의 요지다.

 

감독은 한 여인의 불행한 개인사가 빚어낸 단팥의 단맛이 얼마나 역설적인가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여전히 대중의 눈빛과 무지가 얼마나 냉담하고 차가운지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전해준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의 애틋함이 신파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노인을 성실하게 연기한 키키 키린은 실제 자신의 딸과 출연해서 인물의 연결점을 더욱 생생하게 했다. 감독의 의도였을까? 아니면 영화에 욕심을 낸 키키 키린의 제안이었을까? 이 영악한(?) 캐스팅은 주인공의 회상 장면에서 강력한 빛을 발하며, 핏줄이 엮어낸 닮음이 영화의 몰입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녀의 연기는 더욱 깊어졌다. 단팥의 깊은 맛처럼 빵 없이는 입에 댈 수도 없는 단맛을 가득 담게 되었다. 도쿄 타워의 그 노인은 도무지 어딜 가고, 이젠 흩어진 머리결이 세월만큼 내려 앉은 초로의 노인이 되어 단팥의 소를 빚어낸다.

 

 

 

 

최근 개봉한 일본 영화들은 대부분 칸 영화제에서 익숙해진 작품들이다. 그 느림이 칸 영화제와 닮았고, 그 잔잔함이 프랑스의 남쪽 해안을 닯은 이유일까? 홍상수의 영화가 칸에 자주 초청된다는 이유로 갖게된 프랑스 남쪽 도시의 편견에 최근 몇 편의 일본영화로 말끔히 씻어졌다. 그건 나름의 장점이고 또 단점이다.

 

장신구에 비교하자면 간소한 소품에 지나지 않을 이야기가 2시간의 영상으로 옮겨지는 과정은 지난한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때론 제작자의 숨겨진 의도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 감독의 생각이 '재해석'이라는 명분으로 간섭되는 경우도 많다. 비단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정적인 화면과 느린 전환의 일본 영화들이 유독 많은 이유과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트리트먼트 이상이 될 것 같지 않은 내용의 복잡성을 영상언어와 시간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변형하는 것이 영화의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앙, 단팥 이야기는 조금 다른 궤적에 있다. 앞서 '감독의 힘'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 영화를 선택해도 결코 후회가 없을 것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