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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迷惑)

mimnesko 2024. 3. 19. 09:53
마가복음 13:1-13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뉴욕 록펠러 센터 건너편엔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뉴욕의 한 복판에서 거대한 위용의 성당을 만나는 일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1878년에 완공된 이 대성당은 몇 번의 개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연히 그 곳을 지나다가 성당 안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찬양 소리에 이끌려 성당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높은 첨탑으로 상징되는 고딕 양식의 성당 내부에 들어섰을 때, 텅 비어있는 거대한 공간이 주는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미사를 준비하는 성가대원들의 찬양이 그 넓고 높은 실내를 메아리처럼 채우고 있었습니다. 분명 강대상 근처에서 울리는 소리라고 느껴졌는데, 마치 등 뒤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위화감은, 마치 속세의 자리에서 어떤 성역에 들어선 것만 같은 조심스러움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이 모든 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예수님의 단호한 목소리는 검은 동굴과 같은 거대한 성당 내부를 휘젖고 다닙니다. 이 거대한 건물이 무너진다니. 이 숭고한 성소가 파괴된다니. 도대체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면 이 거대함이, 이 경건함이, 이 아름다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인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건물의 크기에 미혹되지 마라. 그 아름다움에도 미혹되지 마라. 그 규모가 너희를 설득하려고 할 때, 미혹되지 마라."

 


 

미혹(迷惑)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미혹'으로 번역된 헬라어 πλανήσῃ는 '길을 잃게 하다'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가야할 길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무엇엔가 정신이 팔려 마땅히 가야할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미혹됨'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신이 바로 '그'라고 하며 우리를 미혹하려 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가복음 13장 6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여기서 "내가 그라"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 Ἐγώ εἰμι는 요한복음에서 몇 차례나 반복되었던 표현이기도 합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내가 부활이다. 내가 생명이다. 내가 양의 문이다... 그 교묘함으로 우리에게 누군가 속삭이며 우리를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거의 반사적으로 '사이비 집단'을 떠올리게 됩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틀림없이 있을 여러 이교의 집단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자칭 예수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구원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선지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내가 바로 그다'라고 말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하기' 떄문입니다. 교회 입구마다 '신천지 출입금지' 스티커를 붙여놓고 각인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를 '미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구원파가, 여호와의 증인이, 통일교가, 신천지가, 온갖 종류의 미신들이 우리를 미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미혹이 그렇게 멀리 있을까요?

오히려 예수님이 경고한 '미혹'은 소위 우리가 가진 '신앙'의 가장 가까운 곳에, 음습한 곳에, 남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어느 곳에, 깊은 서랍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거대한 규모의 교회 건물 속에, 뉴욕 5번가의 거대한 성당 속에, 매주 수천 명이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들 사이에, 메마른 강대상 위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목회의 방향 위에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마땅히 가야할 길을 떠나게 하는 모든 순간과 장소마다. 내주고 섬겨야하는 자리를 피하게 되는 그 순간마다. 우리는 미혹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를 미혹하게 하는 것은 교회 밖 어디쯤이 아니라, 교회의 깊숙한 곳. 공동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어떤 곳은 아닐까요? 우리가 과연 그 '미혹'을 피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게 '미혹'이라는 것을 알 수나 있을까요?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미혹은 정확한 자신의 목표가 있지. 우리가 길을 잃게 하는 것이 최종의 목표가 아니야. 거룩한 오합지졸처럼 흩어진 성도들 위에 거대한 폭탄이 드리워지는 때가 반드시 올 거야. 하지만 그것도 끝은 아니지. 

견뎌라. 끝까지 견뎌라(ὑπομείνας). 견디는 사람들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