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BARR

네 손에서 면제하라

mimnesko 2024. 1. 30. 10:13
신명기 15:1~23

1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2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3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5 (4절에 포함)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12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13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14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16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17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
18 그가 여섯 해 동안에 품꾼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9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네 소의 첫 새끼는 부리지 말고 네 양의 첫 새끼의 털은 깎지 말고
20 너와 네 가족은 매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을지니라
21 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22 네 성중에서 먹되 부정한 자나 정한 자가 다 같이 먹기를 노루와 사슴을 먹음 같이 할 것이요
23 오직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지니라

 

7년마다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는 '면제년(안식년)의 명령'이 십일조 본문(14:22-29)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놀라움을 줍니다. 십일조가 공동체를 돌보고 섬기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원척이라면, 면제년은 그 원칙을 공동체 내에서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7년마다의 면제년이 7번 반복되는 49년이 지나고, 마침내 50년이 되었을 떄 '희년'이 선포됩니다. 요벨(Jubilee)의 해가 선포되면 모두 소유는 원래의 자리로 돌려집니다. 희년과 안식년, 면제년과 십일조의 정신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레위기 25장 23절에서 그 본질을 요약하셨습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레 25:23)

 

 

우리가 소득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는 것은, 그 모든 소득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 기억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기 위해 성대한 식탁을 마련하여 공동체가 하나님꼐 드려진(gorban) 예물을 함께 식사하는 것입니다. 면제년과 희년 역시, 우리가 이 땅의 '임시 거주자'임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내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내 것인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사실을 망각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우리는 이미 에덴동산에서 목격한 바 있습니다. 선악과를 '내 것'으로 여겼던 하와는  선악과를 손에 움켜쥠으로 낙원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움켜쥠'이야말로 십일조의 정신, 희년의 정신, 면제년의 정신 나아가 하나님의 뜻과 가장 먼 곳에 위치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을 내 손에서 면제하라, 는 본문의 말씀을 말 그대로 그 움켜쥔 것을 놓으라는 의미입니다.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50년이 되는 해에는, 원래의 소유주에게 또 원래의 위치로 다시 돌아가라는 혁명적인 명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만약 여전히 한국 교회에서 '십일조'가 중요하다면, 그 중요함만큼이나 '면제년'의 중요함도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 정신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일조에 대해선 알아도 면제년을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희년'의 의미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내가 마땅히 받아야할 채무를 손에서 면제하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권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면제년이 다가올 수록 더욱 손을 움켜쥐며 내 손에 든 것을 노려보게 됩니다.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9절)

 

 

 

마치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말씀입니다.

내년이며 어차피 못 받을 것, 아예 주지를 말자, 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 보편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성'입니다. 성경의 표현처럼 '악한 생각'입니다.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한 집요한 소유욕입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면 '원죄'라는 단어 외 딱히 다른 표현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뿌리 깊은 소유의 갈증은 기독교의 교리조차 자신의 이기심의 노예가 되게끔 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런 인간의 '강렬한 이기심'이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조차 자신의 입맛대로 수정해 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의 설교요,
공동체의 징계가 없는 세례요,
죄의 고백이 없는 성찬이요,

개인의 참회가 없는 죄사함이다. 
값싼 은혜는 본받음이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다. 

 

-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중

 

 

십일조가 중요하다면 면제년도 중요합니다. 한국 교회가 십일조를 강조한다면 그만큼 내 손 안의 것이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네 손에서 면제하라"는 가르침 앞에서도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보다 공정한 나눔이 있는가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교회가 성도를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앞에 복종과 순종이 없는 신앙을 견책해야 합니다. 과연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부터 교회는 '정치적 올바름'을 십계명의 열한 번째 계명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세상의 조언보다 훨씬 더 혁명적입니다. 단순한 올바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올바르게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손을 보며, 그 손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은 쉽습니다. 그러나 내 손을 펴서 그것을 면제하는 일에는 용기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바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늘 그 값비싼 은혜를 결심하는 믿음 위에 임했습니다. "너희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축복이 바로 내 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움켜쥘 것인가 아니면 펼칠 것인가? 선택은 온전히 우리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