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마을을 지키는 특별한 벽화

mimnesko 2023. 5. 12. 10:27

 

최근에 '공공신학'이란 분야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깊은 이면까지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공공신학이 지향하는 바가 교회의 '공공성'에 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의 특징으로 '편협성', '독선주의' 등을 손꼽는 이유는 기독교가 가진 본연의 특징보다 세상과 교회라는 이원론적인 세상관을 고수하며 교회 스스로가 고립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나뉘어진 '세상'은 전도의 대상이고 선교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교회 구성원 대부분이 '세상'에 속해서 일주일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은 '전도와 선교의 대상'인 세상에서 전쟁 같은 5일을 보내고 와서 일주일에 하루, 그것도 길어야 두 시간 남짓 '교회'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마치 지난 6일의 삶을 통회하며 반성해야 할 것만 같은 목회자의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과연 6일을 살아가는 곳이 '내 삶'인가, 아니면 일주일에 두 시간 남짓 머무는 곳이 '내 삶'인가? 

 

이 첨예한(?) 대립은 교회의 메시지를 더욱 날카롭게 하는 역작용을 한다. 마치 두 시간 남짓한 시간으로 사람들의 6일을 송두리채 바꿔 보겠다는 심산이다. 가능할 리가 없다. 때문에 교회의 메시지는 세상을 '적'으로 규정하거나 '마귀, 사탄'과 동일시하게 된다. 이런 무리수 덕분에 교회 공동체는 다시 한 번 세상으로부터 고립된다. 덕분에 성도들은 '세상의 논리와 교회의 논리'를 가지고 일주일을 죄의식 속에 살아가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 발생하는 대부분의 '죄의식'이 실제 복음이나 신학적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것은 '교회의 존립'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영리하게 이 점을 눈치챈 사람들은 재빠르게 교회 공동체를 이탈한다.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데 오히려 교회라는 '공동체'가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신학은 이러한 교회의 문제를 보완하고자 하는 자구의 노력이며 동시에 더욱 근본적인 기독교 신학의 고민이다. 당연히 걸어야 할 길을 이런저런 핑계로 멀리 돌아왔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길을 걷고자 하는 소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중의 지지와는 달리 현재의 교회를 유지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눈엣 가시와도 같은 말놀이로 여겨지기도 한다. 

 


 

엉뚱하게 '공공신학'을 늘어놓은 것은 최근에 접했던 공공캠페인 하나가 교회의 '공공성'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소방청, 강원도 동해시가 주관한 '마을 벽화 캠페인'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산불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강원도 지역 마을과 그을음으로 어둑해진 골목을 여러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난연성 페인트'를 사용한 벽화로 단장하는 캠페인인데, 그 내용을 보자마자 '디마이너스원'의 기획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디마이너스원(D-1)은 과거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들을 위해 휠체어를 이용해 최단거리로 축구장에 갈 수 있는 지도를 제작한 '모두의 드리블'이라는 캠페인에서부터 눈도장을 꼭 찍었던 대행사. 

 

캠페인을 보자마자 "왜 교회가 먼저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과거 울진 지역 산불 시, 많은 교회들이 재난지원금을 전달하며 공감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또 여러 교회에선 직접 화재 현장을 찾아 잔불을 끄고 현장을 정리하는 일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하나의 응집된 힘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사실 교회는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공공성'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단지 그 목적이 '공공성'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도와 선교의 어떤 도구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을 뿐이다. 

 

만약 이러한 개교회들의 노력을 조금만 모아서, 마치 물방울들이 모여 강물을 이루는 것처럼 영향력을 갖는 하나의 캠페인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조급한 마음도 든다. 교회 공동체의 여러 사람들이 조금만 힘을 모은다면, 또 조금만 마음을 열어본다면 여전히 한국사회에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는지, 또 교회 공동체가 성립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인 빛과 소금의 사명이 과연 사회 속에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