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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전통으로

mimnesko 2023. 3. 1. 08:00
- 마태복음 15:1~20, 개역개정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논어 위정편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자의 의미 그대로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주자는 이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그릇은 각각의 용도에 적합하기 때문에 서로 통용될 수 없다. 덕을 갖춘 선비는 진리를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므로, 그 사용 또한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 단지 한 재주, 한 기예技藝일 뿐만은 아니다."

즉 군자는 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특정 분야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비단 사람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좋은 법과 제도라고 하더라도 그 쓰임새가 '그릇'에 국한되거나 제한되면 오히려 없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가령 음주운전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최근에 그 양형기준이 상향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회의 법감정과는 괴리가 깊습니다. 혈중알콜농도 0.2% 이상인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상해를 입혔을 경우 최대 3년 6개월까지 징역형을 '권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음주측정 거부를 했을 경우와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만약 음주운전을 한 가해자가 교통사고로 피해자를 사망하게 하고 심지어 도주까지 했더라도 법정 최고형은 징역 6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이것이 2023년에 1년 더 상향된 기준입니다. 형법 상 '보통 동기의 살인'이 기본 10년에서 최고 16년까지 형량을 정하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턱없이 모자란 기준처럼 느껴집니다. 음주운전으로 불의의 피해자가 사망을 했다 하더라도 좋은 변호사를 구해서 법정 다툼을 한다면, 이를테면 초범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피력한다면 법정 최고형과는 사뭇 다른 형량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법 감정과 다른 결과가 생기는 것은 제도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종종 법과 제도가 원래의 취지를 벗어난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

장로들의 전통(과거엔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란 일종의 '관습법'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오경의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 500여 개의 보조 율법을 만들어 지금도 관습처럼 지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는 율법을 따르기 위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촘촘이 규정하는 것들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선 안식일이면 모든 엘리베이터가 각층에서 정차하도록 세팅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층을 가겠다고 버튼을 누르는 행위 자체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오를 수 있는 계단의 수, 거리 등이 모두 보조율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미쉬나(Mishina)'라고 합니다. 미쉬나는 '제라임, 모에드, 나쉼, 네지킨, 코다쉼, 토호롯' 총 6권으로 구성되어 '농업, 안식일, 가족법, 민형사법, 제사, 정결법'등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이런 '미쉬나'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해석에 대해서는 당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신 것처럼 보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3절)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로서는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8절에서 단호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8절)

 

이것은 잘못된 그릇에 담긴 내용물은, 그 본래의 취지와 의미를 벗어나게 될 때가 많다는 뜻입이다. 우리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과가 좋은면 과정이 어떻더라도 괜찮다는 발상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뿌리깊은 세속의 사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미쉬나'에도 그런 위험이 있음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과정을 촘촘하게 세우면 결과도 좋을 것이다, 라는 세속적인 맹신에 경고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세운 건축물은 아무리 그 과정을 성실하게 했다 하더라도 결국 참담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세상의 일이라는 관점에서는 그것을 '유능함'이라고 평가하게 되는 걸까요?

 

하나님의 뜻을 좁은 인간의 그릇에 담고 그것만이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일'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혹시 오늘의 내가 좁은 식견과 사고로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합니다. 더욱 더 겸손하고 낮아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