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BARR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mimnesko 2023. 2. 27. 06:00
마태복음 14:13 ~ 21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짐 캐리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는 한 평범한(그리고 매우 찌질한) 사람이 어느 날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갖게 된 뒤 벌어지는 사건들을, 짐 캐리 특유의 코믹스러운 연기와 함께 담고 있습니다. 현실성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는 황당한 설정이긴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영화속의 저런 '능력'을 갈구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요?

영화 중 가장 압권이었던 장면은 주인공 브루스가 '전지전능함'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카페에서 토마토 스프를 둘로 나누는 장면입니다. 마치 홍해의 기적처럼 토마토 스프가 양쪽으로 나뉘어 '벽'처럼 세워지는 장면에서는 도무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전지전능함을 갖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토마토 스프를 둘로 나누는 일이라니...하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토마토 스프가 가능하다면 홍해는 당연한 게 아닌가 하는 묘한 설득력마저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신학교 시절, 신약학 교수님이 마태복음 14장의 본문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오천 명 단체 급식 사건"이라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웃음부터 터졌던 것은 '단체급식'이라는 단어가 담는 '일상성'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병이어'라 하면 그 한자의 뜻도 모르던 시절부터 예수님의 기적을 대표하는 사건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전지전능함의 증거'입니다. 물 위를 걸으셨던 사건이나 죽은 자를 살리셨던 사건의 목격자라고 해봐야 고작 2~30명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마저도 의도적으로 '부풀려진 소문'이라고 주장하다면 현장에 직접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최소 오천 명의 증인이 있습니다. 여자와 어린 아이까지 합한다면 만 명이 넘는 숫자였을 것입니다. 도무지 '기적'이라는 표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이 사건을 '단체 급식'이라는 평범한 단어로 바꿔보면 어쩐지 메마른 느낌이 듭니다. 신학자들의 오만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한 번 이 본문을 대했을 때 '단체 급식'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역시 그 '일상성' 때문입니다. 

혹시 나는 예수님의 이 놀라운 기적을 이천 년 전 단 한 번 일어났던 우연한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재현될 수 없는 어떤 '기이한 사건'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를 보면서 느꼈던 그 '황당함'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치 호랑이가 담패 피던 시절의 옛 이야기처럼 치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은, 다시 말해 언제든지 오천 명의 '단체 급식'이 재현될 수 있음을 믿고 신앙하는 일입니다. 배고픈 자들의 주린 배를 긍휼히 여기시던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가 선 이 자리에서 재현될 수 있음을 역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견고하고 메마른 단어입니다. 더불어 일상적인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이뤄질 일'들에 대한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튀르키에 지진으로 무려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누구랄 것 없이 자발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땅에 위로와 평안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기도와 긍휼의 마음들이 모여 오늘 이 순간의 튀르키에 땅에도 오천 명의 단체 급식 사건을 이어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그 일상의 메마른 일들이 더욱 풍성하게 그 땅에 가득하기를 더불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