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BARR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mimnesko 2023. 2. 3. 10:03

- 마태복음 7:21~29

 

 

학부 시절, 구약신학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십계명'(출 20:1~17)을 설명하시며 소위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조차 간과하기 쉬운 부분들을 지적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중 세 번째 계명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 20:7)

 

이 본문에선 '망령(妄靈)되이 부르다'라는 표현이 다양한 해석을 만들곤 했습니다. '망령되다'의 사전적 의미는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과 행동이 주책없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과 행동이 주책없이' 부르지 말라, 라는 뜻이 됩니다. 한자의 뜻을 해석해 보아도 딱히 감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의미로 말씀하셨을까요?

개역개정의 '망령되게'는 히브리어 '라솨웨'를 번역한 것입니다. 낭비, 무질서를 뜻하는 '솨웨' 앞에 강한 부정의 의미를 담는 '라'가 접두어로 붙어 있습니다. 원문의 뜻을 따르면 '헛되이', '쓸데없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영어 번역도 이러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You Shall not make wrongful use of the name of the LORD you God, for the LORD will not acquit anyone who misuses his name" (NRSV)

 

개역개정의 '망령(妄靈)'은 이런 의미를 보다 폭넓게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이 습관적으로 말하는 표현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뜻이지, 뭐", "하나님 맙소사" 등등의 표현을 삼가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다시 교수님은 이 세 번째 계명에는 그보다 더 깊숙한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는 것(wrongful use of)이란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 하지말라"(레 19:12)는 명령과 같이 인간의 감춰진 욕망에 대한 '정지 명령'과도 같습니다. 특히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수단화'하는 모든 언행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리함을 위해 하나님을 동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빈약한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거룩한 사람인 양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가볍게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 더욱 은밀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자신의 수익 모델로 생각하고, 교회 공동체를 자신의 재정적/정치적 공급원으로 삼는 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제적인, 정치적인 목적과 이득을 위해 교회 공동체를 동원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정지 명령'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기독교인의 구원이 조건적이다'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펴기도 하고, 이미 얻은 구원조차 취소될 수 있다는 괴이한 말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 우리나라엔 그런 빈약하고 조잡한 펠라기우스적 교리로 모든 교회를 적대시하는 또 다른 교회를 세우신 분도 있습니다. 부족한 논리를 '성령의 은사'로 땜질하는 모양새는 이단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십계명의 제3계명처럼,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빈약한 논리의 강화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라! 자신의 집단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사용하지 말라. 사취를 위해 종교직을 사용하지 말라, 라는 엄정한 경고입니다. 설령 그것인 어떤 신비한 효과와 결과를 내었다고 한들(23절), 그것은 하나님의 세 번째 계명으로부터도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로부터도 이미 멀찍이 벗어난 선지자 '노릇'일 뿐입니다. 

 

이러한 위험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나는 교회 공동체를 개인의 이익(그것이 재정적 이익이든, 명예에 대한 욕심이든, 드러나 보이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든)을 위해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저 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교회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모든 일련의 행동이 결국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음에 불과합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그 믿음과 노력은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하루의 경계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