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BARR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mimnesko 2023. 1. 23. 06:30

- 마태복음 3:1~12

 

 

기원전 490년, 아테네군이 페르시아의 침략을 막아내고 기적적으로 승리한 후 필리피데스 라는 한 병사는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40킬로미터의 거리를 쉼 없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승전보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승전의 소식을,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숨가쁘게 40여 킬로미터를 달려온 뒤, 사람들에게 승리의 소식을 알린 뒤 필리피데스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 안타까운 죽음을 기념해서 마라톤 경주가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필리피데스는 마라톤 평원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외치면서 달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승리의 소식이 필요한 것은 비단 아테네 도시의 사람들만은 아니었기에 마을이 보일 때마다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그는 힘껏 외쳤을 것입니다. 그렇게 승리의 소식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를 따라 온 아테네 지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을 것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성경(시대 순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인 말라기는 느헤미야 시대에 어림해서 쓰여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포로들이 모두 돌아오고 성전과 성벽이 보수되었던 시기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들판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운 견고한 성이 세워진 후였습니다. 이제 모두 과거의 영광이, 이스라엘의 영광이 회복되리라 믿었던 그 때였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도비야의 말처럼 '여우만 올라가도'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성벽은 오히려 튼튼했지만, 성 내부 사람들 마음속에는 작은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신다던 그 하나님은 왜 안오시는 거지? 이렇게 성벽도 성전도 회복된 게 아닌가?"

 

그 때, 말라기 선지자는 그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나의 특사를 보내겠다. 그가 나의 갈 길을 닦을 것이다.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주가, 문득 자기의 궁궐에 이를 것이다.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그 언약의 특사가 이를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이르는 날에,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살아 남겠느냐? 그는 금과 은을 연단하는 불과 같을 것이며, 표백하는 잿물과 같을 것이다.
그는, 은을 정련하여 깨끗하게 하는 정련공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금속 정련공이 은과 금을 정련하듯이, 그가 그들을 깨끗하게 하면, 그 레위 자손이 나 주에게 올바른 제물을 드리게 될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나 주를 기쁘게 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심판하러 가겠다. 점 치는 자와, 간음하는 자와, 거짓으로 증언하는 자와, 일꾼의 품삯을 떼어먹는 자와, 과부와 고아를 억압하고 나그네를 학대하는 자와, 나를 경외하지 않는 자들의 잘못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기꺼이 나서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말라기 3:1~5, 새번역)

 

신구약 중간기를 지나, 신약의 시대가 시작되자 마자 광야에서 들려 온 세례요한의 외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사야의 예언, 그리고 말라기의 예언을 떠올리게 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사'와 같이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가 바로 '메시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세례를 받습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마치 세수를 하듯 죄는 몇 번이고 물로 씻어내면 그만이구나 하는 손쉬운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요한의 외침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그들 중 누구도, 정말 그가 '하나님의 특사'일 줄은, 그리고 정말 메시아가 오셨다는 사실을 가슴 깊은 곳에선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어디 한 두번인가? 이렇게 적당히 줄의 가운데쯤 서있으면 되는 거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위로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오늘 우리의 모습은 혹시, 2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과 닮아 있지는 않습니까? 적당한 줄의 가운데 자리 정도를 찾아 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