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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피 남편이로다

mimnesko 2022. 7. 25. 17:39

출애굽기 4:18~31

 

구약 성경을 읽다보면, 도무지 그 문맥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발람의 저주(민수기 22장, 이 본문에선 동물이 말을 하는 진기한 장면이 나온다. 창세기에서 뱀이 하와에게 말을 건 장면 외엔 구약에선 유일하다)나 웃사의 죽음(사무엘하 6장) 등 여러 본문들이 성경을 진지하고 경건하게 대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경우가 있다. 

오늘 본문의 '피 남편'의 경우도 그렇다.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서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출애굽기 4장 24~26절)

 

이 본문은 당장 네 가지의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왜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불러 사명을 부여하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명령한 모세를 죽이려고 했는가? 둘째, 십보라는 모세가 겪는 이 기막힌 상황의 이유를 왜 '할례' 때문이라고 생각했는가? 셋째, 십보라가 아들의 포피를 베어 갖다 댄 '그의 발'은 누구의 발을 의미하는가? 넷째,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아주셨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당연하게도 본문만으로는 이 네 질문의 답을 찾기가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신학자들은 솔직하게 '모세'가 직면하게 된 이 사건의 이유를 모른다고 대답한다. 약간의 상상력을 더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서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라는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풍토병이나 열병에 걸렸다고 보는 해석이 있다. 즉  거의 죽을 정도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십보라는 미디안 제사장의 딸이다. 미디안에도 자신들이 섬기던 신이 있었을 것이고 그 신을 섬기는 형식과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십보라는 남편의 열병과 고통이 어떤 '종교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의 큰 도약이 있다. 갑자기 '할례'라는 주제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열병의 이유를 환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서 찾는 것은 고대 미디안 유목 민족의 습성이라고 보더라도, 그것을 '할례' 때문이라고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할례의 언약은 언제 처음 등장했는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창세기 17장에 그 처음 언약이 있다. 

 

너희 가운데서,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너와 네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 세우는 나의 언약, 곧 너희가 모두 지켜야 할 언약이다. (창세기 17:10)

 

하나님은 아들 하나 없는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라는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지켜야 할 언약을 말씀해 주셨다. 과연 이 언약은 야곱과 요셉의 시대까지, 그리고 이집트의 포로생활까지 지켜져 오고 있었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모세는 자신의 아들 '게르솜'에게 왜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일까? 미디안에서 만난 아내 십보라가 이방인이었듯이, 그 자녀도 '이방인'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모세의 자기염세적인 판단이었을까? 

 

생명의 위험이 닥치자 모세가 떠올린 것이 왜 '할례'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순간에 돌칼을 가져다가 아들의 포피를 베어내는 십보라의 열의는 놀랍기까지 하다. 때문에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라는 십보라의 고백은 믿음과 순종의 고백이라기보단 아들의 피를 흠뻑 손에 묻힌 엄마의 절규처럼 느껴진다.

"자식에게까지 피를 봐야 당신을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