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BARR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

mimnesko 2022. 7. 22. 12:01

출애굽기 3:13-22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 만남은 불 붙은 떨기나무의 극적인 연출과 함께 신비로움을 더한다. 

하나님은 말한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으로 데려가려 하노라
- 출애굽기  3:7~8

 

일곱 개의 동사로 이뤄진 하나님의 놀라운 이야기에 모세는 매료된다. 그 순간만큼은 도망자 신세로 척박한 미디안 광야에서 제 것도 아닌 장인의 가축을 돌보는 스스로의 신세를 깨닫지 못한다. 마치 자신의 오랜 도피 생활,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스스로가 이방인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내 앞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내 조상과 혈통의 하나님일 수는 있으나 여전히 '나의 하나님'은 아니지 않은가? 모세는 질문한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3)

 

모세에게 이 절대자와 신비로운 존재는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태어난 이집트에서도 이방인이었고, 칼날을 피해 도망친 미디안 광야에서도 이방인이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조상의 하나님' 앞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하나님은 이방인으로 80여 년의 생을 살아온 한 노인이자 '게르솜(나는 이방인이 되었다)'의 아비를 부르셨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선택은 늘 중심으로 비껴난 어느 곳을 향한다. 그곳은 좌절과 낙심의 자리이며 낙망과 한숨의 자리이다. 소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를 쓴 소설가 이청준은 예수님이 오시는 바로 그 자리에 세상의 가장 낮은 저점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제목을 지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서, 더 높이 오르려는 인간의 욕망을 끄집어 내리는 서늘한 고백이다. 

 

하나님은 생존의 근거가 희박한 '광야'에서 이방인 모세를 부르셨다. 그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을 만났다. 그의 삶이 송두리채 바뀌었다. 그리고 40여 년의 긴 출애굽의 여정을 마친 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외쳤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화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신명기 6:4~5

 

소명은 '너희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 소명은 한결같이 소외와 핍절의 자리, 거친 광야의 바람과 함께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