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COFFEE

엘카페(El Cafe) & 로스터리

mimnesko 2015. 12. 19. 12:30

 

마음 먹고 엘카페를 찾아간 날이 하필이면 이사를 위해 메인으로 사용하던 에스프레소 머신 '헥사곤'을 들어내던 날이었다. 국내 기술로 제작된 최초의 상용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다니는 이 머신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엘카페를 방문한 마음 중 절반은 되었기 때문에, 카페 입구에 비닐포장되어 조심스럽게 놓여 있는 헥사곤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엘카페는 그리 넓지 않았다. 넓지 않은 매장에 주방 겸 서비스 테스크는 말도 안 되게 넓었다. 한국에서 스페셜티 커피로 나름 유명세를 가진 카페들의 내부 구조가 이와 비슷하다. 압도적으로 매장 크기가 큰 경우(광화문의 테라로사 처럼)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스텀프타운이나 인텔리젠시아의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체감으로 느껴졌다.

 

매장의 테이블 수가 생각보다 적다는 데에 생각이 미칠 즈음에 바로 옆 미닫이 문 너머에 있는 대형 로스터가 보였다. 엘카페의 수익구조가 카페영업보다는 원두 판매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두 대의 로스터가 쉼없이 돌아가는 모습이 그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했다. 엘카페는 커피의 생두를 산지에서 직접 거래한다. 현재 70% 정도의 원두를 대표가 직접 남미의 산지를 방문하여 수매하고 있고, 이후 100% 까지 그 비중을 늘려가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있다.

 

생각해보면, 커피도 땅에서 힘을 얻는 농작물이니 작황의 좋고 나쁨이 있는 게 당연하다. 어떤 특정 지역의 커피가 무조건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와인의 재료가 되는 포도 산지만큼이나 떼루아가 중요하다고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바리스터들이 동의하 듯, 생두의 품질이 결국 커피의 품질을 나타내기 때문에 산지에서 스페셜티 커피의 요소를 충족할 수 있는 질 좋은 생두를 발견한다는 것은 커퍼나 커피무역상들에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량으로 커피를 유통하는 업체들이 대부분 전 세계 커피 재배지역에 자신들만의 농장을 직접 운영하거나 위탁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시장에서의 대량 수매만으로 균일한 품질의 원두를 전 세계에 공급하기란 녹록한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렌차이즈도 아닌 엘카페가 직접 원두를 수매한다는 일은 다소 의외였다. 스페셜티 커피를 표방하고 그 품질에 주력하겠다는 굳은 의지야 절절히 느껴지지만, 그 오가는 경비며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비용을 한 카페가 고스란히 감당하는 것이 수익구조를 반하는 일은 아닐까? 최근 한국의 개성있는 카페들(부산의 모모스, 인 얼스, RHB, 서울의 리브레, 몽타주 등)이 한국커피나 테라로사처럼 커피 산지와의 직거래로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 채산성의 악화로 이어져 행여 카페 운영 자체에 치명타를 날리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카페가 원두 판매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러기에 한국시장은 인구도 여건도 비좁다. 이미 길거리 카페는 레드오션에 접어든 지 오래이고, 그나마 대형 프렌차이즈가 건물 1층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가 하루에 몇 백잔의 매상을 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카페가 줄어든다면 당연히 원두의 매출처가 줄어든다. 개인이 생두를 구입해서 로스팅하는 로스터리가 늘어나고 있다곤 해도 초기 비용이나 채산성을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하루게 다르게 상승하는 임대료를 감당해 내기에 커피 한 잔을 위한 애씀과 노동이 속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저런 잡감을 가지고 커피를 주문했다. 하나는 바리스타가 추천해 준 과테말라 엘 사포테 드립이었고, 하나는 브랜딩의 라떼였다.

 

 

 

일반적으로 스페셜티 커피의 특징을 '신 맛'이 많다는, 것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사실 커피의 맛이라는 게 쓴 맛과 신 맛, 그리고 아로마를 얼마나 잘 조화시키느냐에 있다는 것이 나의 주관이기 때문에 신 맛이 많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점수를 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커피의 맛보다 그 전의 준비(따뜻하고 깨끗한 컵, 커피의 주제와 어울리는 디자인의 커피 잔, 적절한 서빙온도)가 소위 스페셜티 카페를 표방한 업소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믿는 못된 편견을 고수하고 있는 편이다.

 

엘카페의 과테말라 엘 사포테의 산미는 경쾌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좀 많이 '경쾌'하다. 밝고 투명하고 많이 경쾌했다. 그래서 목 넘어까지 그 경쾌함이 남았다. 좋게 말하자면 약배전과 제대로 내린 드립의 승리였고, 나쁘게 말하자면 커피를 마신 뒷 맛이 그닥 깔끔하진 않다는 뜻이다. 다른 베이커리 없이 커피만 마시기엔 그 경쾌함이 좀 지나친 감도 있었다. 물론 이것도 취향이라 이런 느낌의 커피가 친숙하고 좋을 수도 있다. 내 경험으론 스텀프타운의 과테말라가 이런 느낌이었다. 부암동 클럽 에스프레소의 과테말라에 길들여진 내게 스텀프타운의 과테말라는 당황스러울 정도였지만, 최근 클럽 에스프레소의 과테말라도 조금씩 산미를 더해가고 있기 때문에 이것도 나름의 '유행'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헥사곤의 에스프레소는 맛볼 수 없었지만, 시모넬리(Simonelli)로 추출한 에스프레소와 고운 스팀밀크의 조화는 훌륭했다. 카페에서 라떼는 꼭 맛보는 편인데 스팀 밀크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드는 것은 같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한 라떼의 경우에도 스팀의 질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인사동 카페 '연두'의 스티밍은 그래서 훌륭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엘카페의 라떼는 훌륭했다. 브랜딩 커피가 꽤 괜찮다는 이야기다.

 

서비스 테이블과 나무로 이어붙인 바(Bar)에는, 방금 전에 커핑이 있었는지 여러 잔의 커피가 놓여 있었다.

 

 

 

 

 

로스터리를 같이 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인데, 커핑을 자주 볼 수 없는 일반인(나와 같은)에게는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그 뒤로는 드립 데스크(참으로 탐나는....)가 있었고 정성껏 손질된 커피 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커피 관련 용품이나 기구들이 비좁은 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이는 엘카페 대표님이 스스로 자인했듯 커피 기구를 다량으로 사들이는 못된(?) 습관에서 기인한 것이다. 처음 자리 잡았던 망원동에서도 커피 기구를 놓을 자리가 없어 이곳으로 옮겨 온 건데, 이젠 서교동의 매장도 손님의 테이블을 치우고 기구와 장비를 놓아야할 지경이 되었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듣게 되었다.

 

 

 

 

엘카페는 현재 선유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대형 로스터를 놓기 위해선 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양 대표님은 말씀하셨는데, 그 대형 로스터가 궁금해서라도 반드시 다시 한 번 방문해서 후기를 남기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