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Lomography

경춘선

mimnesko 2015. 7. 1. 00:38

 

 

Lomo LC-A

_경춘선 무궁화호 안에서

 

 

최근에서야, 경춘선이 전철화되어 더이상 무궁화호가 달리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서 말 그대로 화들짝 놀랐다. 대학교MT(나중에 '모꼬지'라고 이름도 바꾸어 불렀다)의 대명사와도 같던 대성리를 가기 위해 청량리 역에서 무궁화호에 올라타서 1시간 남짓한 기차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사람들에게는 아쉽다 못해 땅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일 것만 같았다.

 

90년대 초반, 당시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무작정 춘천에 살던 선배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딱히 약속한 것도 없고,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보급되어 있던 시절도 아니라 만약 선배가 있을만한 곳에서 못 찾으면 영락없이 미아가 될 형편이었지만 어지간히 끓어오르는 핏덩이가 몸속에 있던 때라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한림대와 강원대(춘천에 있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선배를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근처 당구장에서 놀라운 600다마(10분에 600원이란 건데, 당시 서울이 10분에 1,200원 정도였으니 이쯤이면 놀랍지 않은가!)를 한 게임 치고 저녁이나 사먹을 요량으로 한림대 근처를 얼씬거리고 있었다. 딱히 걱정은 없었다. 춘천에서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 막차가 생각보다 일찍 끊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아직 8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서울로 가는 기차가 없다니!!

 

우리 일행은 다시 한림대 근처에서 선배를 찾아보기로 했다. 어디서 숙박을 할 만한 돈을 들고 온 게 아니라서 자칫 노숙이라도 해야할 상황이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여자라서 그것조차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 때 기적처럼 우리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뛰어다니던 선배를 볼 수 있었다(생각해보면 한림대 근처가 별로 큰 동네도 아니었던 탓도 있다. 하숙집이나 자취집에 몰려 있던 동네는 두 블럭도 되지 않았다). 선배가 우리 중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가 춘천에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리고 학교엘 갔더니 과 친구로부터 서울에서 동생들이 찾아왔더라는 말을 전해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의 두 시간 동안 한림대 근처를 뒤지고 다녔다는 선배는 온통 시뻘개진 얼굴로 진심으로 반갑게 우릴 맞아주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도 경춘선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 날의 오후가 떠오른다.

막차가 끊겨버린 남춘천역. 한림대 앞의 스산하던 공기. 저녁 밥상치곤 꽤 거나하게 먹었던 먹자골목. 다음날 무궁화호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다음에 한 번 더 와보자' 다짐했던 녀석들. 지금은 행방조차 제대로 모른다. 누군가는 결혼을 해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겠고, 또 누군가는 복잡한 출근 지하철 안에서 페이스북이나 뒤적이며 시간을 때우고 있겠지. 그래도 혹시 기억해 줄까? 그 날의 무궁화호를.

 

배 밖으로 간을 내놓고 다녔던 20대의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춘천 여행. 의암댐 위에서(그것도 도로 한복판에서) 호기롭게 찍은 어색한 사진 한 장으로만 남았던 그 날을 다들 기억하고 있을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