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2014)

mimnesko 2015. 1. 21. 02:29

 

 

사실 전편 '퍼스트 어밴저스 : 캡틴 아메리카'(2011)[각주:1]가 적잖은 실망이었기 때문에, 속편에 대한 기대가 많지 않았던게 솔직한 마음. 무엇보다 히어로 무비는 가끔 잊을 때면 한 편씩 나오곤 하는 어벤저스 정도면 적당하지 않은가? 게다가 거긴 헐크도 있고, 아이언맨도 있으니까.

 

게다가 아무리 존재감 없던 1편이었다고 해도 스핀오프나 속편이 날려버린 1편의 기쁨이 어디 하나 둘이었던가! 이 부분에 대해선 이미 빅뱅이론의 레너드와 라지가 명쾌하게 정리해 준 바 있다.[각주:2] 다만 한 가지 기대가 있었다면 엉뚱하게도 '헬리캐리어'라는 무시무시한 비행기의 등장 정도였다. 이미 배틀십에서 대규모의 우주선을 자유자재로 바닷물에 집어 넣던 ILM의 기술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어밴저스에서 잠깐 위용을 드러냈던 핼리케리어를 제대로 볼 기회가 아닐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왠걸! 그나마 유일한 기대였던 헬리캐리어는 하늘에 뜨자마자 어이없게도 팀킬을 당하고 말았다[각주:3]. 자, 그럼 이 영화는 이제 볼장 다 본 셈인가? 속편의 저주를 벗어날 수 없는, 어밴저스의 그렇고 그런 스핀오프 중 하나였는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도무지 이 방면으론 제대로 된 필모그래피를 찾을 길이 없는 조 루소와 안소니 루소 형제는 단순히 오락영화에 그쳐도 누가 뭐랄 사람 없는 캡틴 아메리카를 속편에서 다크나이트(바로 그 놀란 감독의)에 버금가는 영화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화려한 볼거리를 만들어 내는 재주도 남달랐지만 무엇보다도 어밴저스 시리즈의 바른생활 사나이 '캡틴'을 통해 이 시대의 진정한 적은 어느 특정한 국가가 아니라 패권주의적 집단, 혹은 우생학적 파시즘에 경도된 집단임을 분명히 했다.

전직 KGB였던 블랙 위도우를 통해 미국이라는 껍질 속에 교묘히 감춰진 파시스트들의 음흉한 계획이 낱낱이 공개되는 장면이나 결국 그 일로 인해 청문회까지 출석해야 했던 블랙 위도우의 마지막 대사는 심지어 통쾌하기까지 하다.

 

어밴저스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도 어쩌면 70년간 냉동된 덕에 세상 물정 모르는 단순함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성조기를 떡하니 그려넣은 코스튬이며 방패에서 연상되는 '국수주의적'인 사고는 어디에도 없다. 흑인과 백인의 차별이 심하던 때에(1, 2차 세계대전만 하더라도 흑인과 백인의 구분은 군대에서조차 적지 않았다) 냉동되어 갑자기 이 시대에 짠하고 되돌아 왔는데,  눈 떠 보니 명령자도 흑인이고, 가장 친한 동료(팔콘)도 흑인. 그런데 군말 한 번 없이 명령을 따르고 팀웍을 이루는 대인배가 아닌가. 어느 스탠딩 코메디언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각주:4]

 

 

 

그래서 캡틴 아메리카의 자유로운 사고가 오히려 지금은 한국사회에 꽤 음험해 보일 수 있다. 주적의 개념을 벗어나 누군가에게 '옳음'을 강제하는 것이 바로 파시즘이고, 어떤 낭만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시도 자체만으로 이미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그의 논리는 '종북'이라는 프레임 하나로 온갖 종류의 정치적 실패를 가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어느 집단을 향한 경고 같기만 하다.

 

집단화된 사람들의 생각을 '여론'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여론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길을 '언로'라고 한다. 언론의 역할은 여론의 언로를 따라 특정 집단의 이익에 곡해됨 없는 정보를 다수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만약 그와 반대로 언론의 '기획된' 어떤 사고가 시스템을 통해 '길'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려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것을 시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파시즘'이며 괴벨스의 '프로파간다'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어지러운 모양새는 바른 여론의 길이 막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 모여 만들어 낸 세찬 물줄기가 아니라, 깃털처럼 가벼운 SNS의 채널들로 마치 분무기처럼 뿌려지고 있는 안개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넷심따위'라는 말도 하는게 아닐까. 그래. 그래서 우리에게도 캡틴 아메리카가 필요한 것이다. 국가의 필요에 의해 '제조'되었지만, 스스로의 '자각'으로 마침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존재가 하나쯤은 필요한 것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전작에 비해 캡틴 아메리카는 방패를 매우 잘 사용하게 되었다. 액션씬의 타격감도 일취월장했다. 맨주먹만으로도 장정 열댓 명을 비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때려 눕히는 장면은, "가만, 이 감독이 신세계를 봤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게 합이 이뤄져 있다. 시보레 밴의 월등한 내구성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는 자동차 추격씬도 놓칠 수 없는 장면. 전반적으로 액션이 정교해 졌고, 타격감은 압도적으로 강화되었다. CG는 넘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을 지켰으며, 아예 대놓고 CG가 필요한 장면들은 과감하게 그 덩치감을 보여줬다. 정말이지 워쇼스키 남매의 뺨이라도 때릴 기세의 영화임에 틀림없다.

 

영화 후반부에 반가운 얼굴이 잠시 등장한다. 루소 형제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확인해 보니 TV 시리즈 '커뮤니티'의 연출자. 우정출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커뮤니티에서 아벳을 열연한 대니 푸디의 모습을 보는 순간(심지어 캐릭터도 비슷하다) 웃음부터 터져 나오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다. ㅎㅎ

 

 

 

바로 이 분!

 

 

 

이쯤 되니 루소 형제가 연출을 계약한 캡틴 아메리카의 3편이 궁금해질 수밖에. 게다가 3편의 주제는 시빌 워(civil war). 즉, 캡틴 아메리카 대 아이언맨의 구도가 아니던가! 이미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슈트를 벗은 당신은 도대체 누군가!'라고 토니 스타크를 도발하던 바른생활 사나이 스티븐 로저스였는데 3편에선 얼마나 까칠하게 집단화된 악과 맞설지 기대가 된다.

 

 

사족으로,

믿고 보는 ILM의 특수효과는 다시 봐도 놀랍기만 하다. 대부분의 장면이 그린스크린에서 촬영되었으리라 예상도 되고 영화 촬영 시에도 어떤 장면을 어떻게 CG로 정리할 지를 구분하는 슈퍼바이저의 세밀한 연출이 있었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화면 가득 존재감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이나 그것을 감안하여 연출하는 감독이나, 또 그 위에 CG를 입히는 CG 스튜디오 모두 엄청난 내공을 지녔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1. 어밴저스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인지도가 낮은 히어로였기 때문인지 사대주의적 네이밍 같은 '캡틴 아메리카'를 떼고 '퍼스트 어밴저스'로만 소개되었다. [본문으로]
  2. 빅뱅이론 시즌6 에피10 : 라지가 프랜차이즈를 죽인 영화제를 하자고 제안하자 레너드가 '조스4, 인디아나존스4, 그리고 데어데블1(^^)을 말한다. 심히 공감될 수밖에. [본문으로]
  3. 이건 스포일러가 맞다 [본문으로]
  4. 궁금할까봐 아래에 첨부해 놓았다. 펼치면 볼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