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86

오랜만의 라이딩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을 때 라이딩만큼 좋은 게 없다. 한 시간 남짓 28km의 거리를 달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호흡을 반복하다 보면, 비로소 한강의 서늘한 가을 바람이 느껴지고, 저 멀리 양화대교가 보인다. 고민하던 일들이 다 뭐였다 싶고 그동안 쉰 덕에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새삼 실감하며 기분좋게 피곤해졌다. 그래, 더운 물로 샤워를 하자. 내일 일은, 내일 고민하면 된다. Fin.

REMEMBRANCE 2015.10.22

[연극] 햇빛샤워

효선이가 강력하게 추천했던 연극을 가까스로 보았다. 종연 하루 전이기도 했고, 낮부터 하루종일 비가 내리기도 했고, 인터넷 예약이 안 되어서 전화로 겨우겨우 예약을 하기도 했고, 하필 그 예약한 자리가 더블이 나서(기다리다 보니 더블 부킹이 된 좌석이 적지 않아 보였다. 자리를 안내하던 직원들은 '전산상의 이유'라고 설명했는데, 그건 종종 의사들이 '신경성'이라고 말하는 것과 흡사한 일이다) 예약과는 달리 좀 엉뚱한 자리에서 보기도 했기 때문에 '가까스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극단 이와삼의 장우재 대표가 자신이 쓴 희곡을 직접 연출했다. 효선이의 이야기처럼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고, 가변적으로 움직이는 무대의 연출 역시 훌륭했다. 씽크홀, 이라는 말이 조금 진부하게 느껴졌지만, 말 그대로 씽크(sin..

REMEMBRANCE 2015.07.29

달팽이

Sony RX-1 Carl Zeiss T* 35mm F2.0 어쩌다보니 달팽이가 네 마리나 생겼다. 사실 알(달팽이가 알에서 태어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은 6개를 분양받았는데 막상 부화를 시켜놓고 세어보니 네 마리다. 다른 두 마리의 행적에 대해선 아직도 묘연하다. 나머지 네 마리가 맛있게 냠냠 먹어버렸다는 설도 있는데, 달팽이는 대부분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럼 도대체 두 마리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집을 몰래 빠져나와 먼 여행이라도 떠난게 아닐까? 마치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모래톱에서 바다를 향해 기어가는 꼬마 거북이들처럼, 밤마다 사그락 사그락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서 창틈이며 벽 사이를 기어가는 달팽이..

REMEMBRANCE 2015.07.05

클릿페달 적응 중...

iPhone5 최근에 자전거를 점검하면서 페달을 교체했다. 지금은 일본에서 알콩달콩 보내고 있는 Tim에게 양도받은 Look 클릿을 내내 보관만 하고 있다가, 일단 설치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바이크 클리닉 미캐닉에게 부탁을 드렸다. "전에 클릿 페달 사용해 본 적 없으시죠?" "...네." 그러자 미캐닉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손가락을 세 개 펴서 나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세 번은 넘어지실 거에요." "...네?" "클릿페달은 세 번은 제대로 넘어져야 적응한다는 뜻이죠. 저도 세 번 넘어졌어요." 이미 제대로 한 번 넘어지고 난 뒤라 가뜩이나 풀이 죽어 있었는데 이런 먹구름 가득한 예언이라니! 내가 자전거를 안고 넘어지는 걸 상상해 보면 된다. 실제로 최근에 제대로(?) 넘어질 때에도 나..

REMEMBRANCE 2015.07.03

순진한 기독교 : 이야기를 시작하며...

중세를 암흑의 시기로 보는 것은 다분히 인본주의자들의 시선이다. 교황의 절대적인 권력 아래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이 실종된 중세시대는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2/3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된다, 는 식의 접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꽤 우울한 그림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본주의자'들의 입장에선 오히려 이 시기야말로 어떤 혼란과 혼돈이 없던 매우 선명한 시기였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질문조차 거세된 삶은 단순하고 질서 정연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이유는 종교적인 판단으로 귀결된다. 즉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이 얼마나 명쾌하고 즐거운가. 단순무식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단순하고 무식한 것에는 결코 적지 않은 '힘'이 있다. 다양성과 단순함의 싸움이라면 그건 해보나 마나한 ..

REMEMBRANCE 2015.06.16

부상(負傷)

지난 12월부터 5월까지 5개월간 나름 꾸준히 운동을 했다. 무엇보다 3일 이상 운동을 쉬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업무 중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운동시간은 45분 내외. 양보다는 질이 중요한 상황. 처음 PT로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45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유산소 서킷이 중심이 되었다. 런지, 사이드 스텝, 제자리 달리기, 버핏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설레 설레하는 서킷 중심으로 2개월 정도를 운동하며 기초체력을 끌어 올리려 노력했다. 이후 유산소와 함께 웨이트를 시작한 뒤로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부상에 대해 나름의 대비를 했다. 충분히 웜업을 하고 운동 전 스트레칭 역시 늘 하던 순서대로 빠짐없이 반복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상체나 하체 운동 후에 뻐근함이나 근육..

REMEMBRANCE 2015.05.18

오랜만의 외식

반가운 사람들과의 한 끼 식사는 뭘 먹든 즐거운 일이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맛있는 양념이 되기도 하고 지금의 고민과 어려움들이 반찬이 되어주기도 한다. 잠깐의 이야기만으로 딱히 무언가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 마음과 생각의 무거운 짐을 다소나마 덜어내기엔 충분하다. 살아가는 일은 반복하는 일이고, 잘 살아가는 것은 '반복의 지혜'를 아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으로 양치를 하고 비좁은 지하철에서 하루 일과를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누구나 '잘'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하루의 끝에 즐거운 식사와 맛있는 대화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오늘처럼.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내일처럼.

REMEMBRANCE 2014.10.16

단팥빵

최근 들어 '단팥 홀릭' 때문에 종종 맛보게 되는 단팥빵. 처음 시작은 흔하디 흔한 프렌차이즈 빵집 '파리바게뜨'의 단팥빵을 맛보다가 '이거, 뭐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틀림없이 빵에 단팥을 넣은 단팥빵인데 도무지 빵맛도 팥맛도 제대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옆에 '우리통단팥'이라는 이름의 빵이 하나 더 있었다. 우리나라 밀가루(참고로 파리바게뜨, 즉 SPC는 우리밀 제분업체인 '밀다원'을 소유하고 있다)에 신안 통단팥을 넣었다는 건데, 다시 말하자면 내가 먼저 집었던 '단팥빵'은 우리 밀가루는 당연 아니고 통단팥보다는 수준이 낮은 앙금이었다는 말이 되겠다. 그래서 '우리통단팥'도 맛을 봤는데 화려한 설명과는 달리 빵은 질척이고 팥소는 지나치게 달아서 무슨 맛인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REMEMBRANCE 2014.09.17

일상

책 한권을 들고 벌써 며칠 째 같은 페이지만 반복하고 있다. 출퇴근 길에 읽겠다고 가방에 넣어와서 딱 그만큼 출퇴근 길이 무거워지기만 했다. 요즘은 제법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입추만 지나도 바닷물이 선뜩해진다더니 세수를 해도 온수비뮬이 조금씩 높아진다. 수련회며 여행이며 바닷가로 떠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면서 또 조금 일찍 가지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생각만 많고 손은 더디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육중하고 무겁지만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주는데, 내 일상은 그냥 육중하고 무겁기만 하다. 자전거를 좀 타야겠다. Fin.

REMEMBRANCE 2014.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