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86

지아지아탕바오(가가탕포, 佳家湯包)

오직 맛있는 샤오룽바오를 먹기 위해서 찾아간 가가탕포(佳家湯包). 상해 사람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보니 사람이 가장 적을 시간을 노려서 찾았으나 그래도 10분 웨이팅은 기본. 기다리는 동안 동네 산책.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빨래가 널려 있는 창문을 흥미롭게(뚫어져라) 보다가, 주인 분과 눈이 마주쳤으나 자연스럽게 넘어감. 드디어 나오심. 겉보기보다 매우 뜨거움으로 이렇게 구멍을 내줘야 함. 넌... 이름이 뭐였더라... 흡사 코카콜라 병을 닮은 곳에 담겨 나오는 두유. 의외로 맛이 훌륭해서 한국에 돌아와 폭풍검색을 하였으나, 직구로밖에는 살 수 없는 귀하신 몸이었음. 한국에서 가가탕포의 맛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숙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구복만두'. 이곳 역시 현지인(이 경우엔 한..

REMEMBRANCE 2023.01.13

누가 죄인인가?

우선 이 글은 영화 '영웅'에 대한 리뷰가 아닙니다. 원작 뮤지컬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뮤지컬보다 더욱 영화적으로 잘 해석되었는지, 또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는 순전히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도마(Thomas)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삶을 재조명한 극영화로서만 본 개인의 아쉬움을 짧게 적고 싶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겠지만, 사실 안중근의 삶을 그린 영화가 한 편 더 있었습니다. '도마 안중근'(2004). 네, 망한 영화입니다. 대본도 망했고 감독의 연출도 망했고 음악도 망했고 촬영도 망했습니다. 심지어 주연을 맡았던 유오성 배우가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주연 자리까지 걷어차고 출연을 결심했던 영화이기에 더욱..

REMEMBRANCE 2023.01.05

한국교회 트렌드?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한국교회 트렌드 2023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책을 발간했다. 저자 중 실천신학대학원의 정재영 교수(반가운 이름)가 있어, 책의 이름이며 디자인 자체에서 대번에 비슷한 책이 연상되는 불편함과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살펴보았다. 목차를 보니 2023년 한국교회의 트렌드를 나열한 11개의 영어 표현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레퍼런스 도서는 영단어의 스펠링을 첫글자로 화두를 뽑는(Acrostic) 방식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필요성이라도 있었는데, "Rabit Jump" 라는 식의 연상조차 필요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낯선 영어 단어들로 목차를 채웠을까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 그 표현들이 영어가 아니고선 도저히 담을 길 없는 주제의 응축이 있는 것도 아니다. 2장의 제목 '..

REMEMBRANCE 2022.12.12

The Köln Concert

1975년 1월 24일. 밤새 내린 눈은 길위에 질척하게 얼어붙어 번쩍인다. 동쪽 숲에서 시작된 바람은 습기를 머금어 축축하다. 머플러를 단단히 동여보지만 틈새로 스며드는 한기를 막기란 쉽지 않다. 호텔을 나서니 좁은 오거리 길은 만난다. 호텔 앞을 가로지르는 Clever 스트리트를 따라 라인강을 왼편에 두고 걷는다. 차가 많지 않았고 도시는 고요했다. 이정표엔 'Theodor-Heuss-Ring'이라는 낯선 이국의 글자가 적혀 있다. 근처 공원의 이름인지, 아니며 그 공원을 순환하는 도로의 이름인지는 알 길이 없다. 테어도르 호이스 링, 발음이 좋아 몇 번 따라 불러 본다. 근처 아파트의 열린 창문으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아직 서툰 연주라서 곡은 난이도가 높은 마디에서 형편없이 느려진다. 바흐의 골..

REMEMBRANCE 2017.06.30

오후의 그늘

돌이켜 생각해보니, 난 당신에게 그늘이 되고 싶었나보다. 따가운 햇살이 당신의 가늘고 긴 뒷목에 빨갛게 내려 앉을 때 한줄기 바람처럼 서늘한 그늘이고 싶었나보다. 당신이 힘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힘들다'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 손에 든 가방의 무게만큼 가만히 고개를 기대고 숨을 고를 수 있는 든든한 그늘이고 싶었나 보다. 가끔은 거센 파도처럼 마음을 할퀴는 눈물 앞에서 말없이 눈물을 받아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늘이 되고 싶었나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이 나에게 있기를 바랬다. 당신에게 소중한 것 중에 내가 있기를 바랬다. 그 마음이 지나쳐 욕심이 되고, 미련한 욕심이 자라 때론 삐죽삐죽 튀어나온 입술이 되었을 때, 폭신폭신했던 처음의 기억이 온데간데 없고, 바싹 벼린 날이 뜨거운 심장을 헤집어..

REMEMBRANCE 2017.06.30

困而不學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곤이불학, 민사위하의 논어에 나오는 이 한 구절에 오랫동안 눈이 멈췄다. 마치 타인이 내 삶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부끄러움도 들었다.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라 말했다. 나로서는 요령부득의 일이라 '배워서 아는' 수준이라도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실제의 삶은 그 마저도 순탄치 않다. '곤경이 처하고 나서야 배우는'(困而學之) 수준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성경은 '고난'을 통해서 성장하는 믿음을 이야기한다. '환난'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character, 메시지 번역)을 낳는다. 즉 고난을 통해서 한 사람의 온전한 인격과 품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믿음의 조상들의 삶은 고난의 조상들의 삶이기도 했다...

REMEMBRANCE 2016.11.23

할매국밥

좀처럼 나는 부산과 인연이 없었다. 20여년 전, 맥도날드조차 하나 없던 시절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밤기차에서 내려본 것 말고는 부산을 딱히 경험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2014년 초가을에 당시 맡은 일 때문에 부산엘 내려 가게 되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를 봤고, 태어나 처음으로 여름이면 해변가득 세워둔 파라솔로 정작 모래가 보이지 않던 해운대의 바다를 봤다. 부산의 길은 혼잡했고 아파트가 높았다. 동서고가를 타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일은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도 늘 아슬아슬한 좌회전과 우회전의 연속이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안내음성이 '10시 방향 좌회전'이었다. 보통의 사거리와는 전혀 다른 갈림길이 눈앞에 있었다. 재빨리 머리속에 시계를 그려서 10시 어림쯤에 길을 찾아본다. 문제는 ..

REMEMBRANCE 2016.02.14

겨울소감

납전삼백(臘前三白)이면 그해 풍년이 든다던데, 올해는 푸짐하게 내렸던 초설 이후 거의 눈 다운 눈을 만나지 못하고 섣달 그믐이 지난 지금까지 이백(二白)도 온전히 채우지 못했으니, 40년 만의 가뭄이란 말이 영 허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흘간 정상적인 식사를 거르고 닷새 째에 미음으로 위장을 채운 뒤,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집어 넣은 탓인지 속은 내내 편하지 않다. 하긴 이미 속이 편하지 않아 음식을 삼키지 못한 것이니 딱히 음식탓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2016년을 와신상담의 해로 세모에 기록했으나, 정작 와신하고 상담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았다는 미흡함에 자책한다. 늘 마음이 생각을 앞지르고 생각이 그 다음을 앞지르는 어리석음이 있었다. 올해는 그런 어리석음으로 조금이라도 덜어보자 생각했다. 그..

REMEMBRANCE 2016.02.08

주말의 소파

몇년 간 출근과 퇴근이 선명한 일을 반복하다보니 주말의 귀함을 알게 되었다. 비록 주말에도 정해진 출퇴근과 업무가 있기 때문에 그 기분을 만끽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주말은 주말이었다. 꿀맛 같은 졸음에 저 멀리서 들리는 알람 소리를 가까이 끌어당기지 않아도 되고, 비좁은 사람들의 마음이 좁은 공간만큼이나 가깝게 다가오는 출근 지하철의 혼잡함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살아가기에 어쩔 수 없는 소음과 냄새를 참아내기 어려울 때가 가끔 있다. 이것이 바로 삶이고 굳게 두 발 디딘 현실이라 생각해도 종내 마음 끝이 무뎌지지 않는 일들이 가끔 있다. 주말에는, 그 날선 마음을 잠시 잊는다. 월요일 아침 7시 40분, 왕십리를 출발하는 분당선 지하철 안에서 고스란히 다시 살아나게 될 마음이라도 주말에는 잊..

REMEMBRANCE 201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