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76

그가 오신 이유

- 마태복음 9:27~38 늦은 저녁, 서울 근교의 기도원을 방문하기 위해 혼자 산길을 올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가 기도원까지 이어져 있었고 드문 드문 가로등이 밝혀져 있긴 했지만 그래도 주위가 깜깜해진 시간에 인적 없는 산길을 올라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특히 드문한 가로등의 노란 빛 아래 있다가 그 경계를 벗어나 컴컴한 길로 접어 들 때면 저절로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올 정도였습니다. 약 30분 남짓한 그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 그 거뭇한 길 사이로 무언가 희끗한 게 보였습니다. 애써 눈길을 피하려 애썼지만, 심장은 가빠오고 저절로 눈은 그 정체모를 것에 집중이 되었습니다. '사람인가?..

MIDBARR 2023.02.09

당인불양(當仁不讓)

- 마태복음 9:1~13 명나라 말 청나라 초, 고염무라는 사람은 명나라가 망하자 비밀조직을 결성해서 반청 운동을 벌이다가 끝내 실패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청나라 조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평생을 저술로 마쳤습니다. 그의 대표작이 바로 '일지록'(日知錄)입니다. 그 책에서 고염무는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고 주장합니다. 말 그대로 "천하가 번성하고 쇠퇴하는 데는 논에 농사를 짓고 산에서 나무하는 보통 사람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사고로 많은 사람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 먹고 놀러간 사람들이 사고로 죽은 것까지 우리가 애도해야 하는 거냐"라는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자발적으로 '피해자'가 되는 ..

MIDBARR 2023.02.07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 마태복음 8:23~34 깊은 바닷 속을 들여다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낚시배를 빌려 바다 낚시를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뭍에서 떠난 통통배는 약 20여 분 간 물살을 가르고 바다 가운데로 향했습니다. 점점 멀어지는 뭍을 바라보며, 그리고 소금기 가득한 바람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는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배가 엔진을 끄고 닻을 내렸습니다. 날씨는 맑았고 바다의 너울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연신 배를 때리는 파도에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배는 위 아래로, 때론 조금 불안한 소리를 내며 양 옆으로 흔들거렸습니다. 배의 선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사람들에게 간단..

MIDBARR 2023.02.06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 마태복음 7:21~29 학부 시절, 구약신학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십계명'(출 20:1~17)을 설명하시며 소위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조차 간과하기 쉬운 부분들을 지적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중 세 번째 계명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 20:7) 이 본문에선 '망령(妄靈)되이 부르다'라는 표현이 다양한 해석을 만들곤 했습니다. '망령되다'의 사전적 의미는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과 행동이 주책없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과 행동이 주책없이' 부르지 말라, 라는 뜻이 됩니다. 한자의 뜻을 해석해 보아도 딱히 감..

MIDBARR 2023.02.03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마태복음 7:13~20 요즘처럼 말이 풍성한 시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유튜브 채널 몇 개만 보더라도 새삼 감탄할 정도의 언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이 분야의 최고는 TV홈쇼핑 채널의 쇼호스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연히 채널을 넘기다가 홈쇼핑 채널을 보게 되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아니 그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만해도 살면서 한 번도 필요성을 느껴본 적조차 없었는데... 쇼호스트들의 유려한 말솜씨에 휘감기다보면 어느새 '저건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야말로 마력 같은 힘이지요. '말'을 잘 하는 걸로는 목회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듣다 보면 정신이 어질해질 정도로 말을 잘하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목회자들과 사석에서 ..

MIDBARR 2023.02.02

그 헤아림으로

- 마태복음 7:1~12 만약 오늘 묵상을 새벽 설교나 강해 설교의 본문으로 정했다면, 틀림없이 그 강조점은 7절에 맞춰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문장의 기승전결 구조처럼 마태복음 7장의 전반부는 7절 말씀을 향해 달려가는 완만한 상승곡선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대단원의 결론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는 12절의 말씀에 놓입니다. 비록 신학자 칼빈은 이 결론이 앞의 말씀, 즉 7장 1~11절까지와는 큰 관련이 없이 서술된 단독적인 도덕률이라고 보기도 했지만 접속사 '그러므로(헬 oun, 영어로는 then, therefore..

MIDBARR 2023.02.01

염려하지 말라

- 마태복음 6:19~34 고대 로마의 작가 '히기누스'가 쓴 우화가 있습니다. 염려의 신 '쿠라(Cura)'가 어느 날 강가를 건너다 진흙을 발견하고 그 진흙을 떼어 형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주피터 신에게 자신이 만든 진흙 형상에 혼을 불어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주피터는 흔쾌히 쿠라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쿠라가 그 형상에 이름을 붙이려고 하자 주피터가 자신이 혼을 불어넣었으므로 자신이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고의 신(神)이라기엔 참 속좁은 모습입니다. 쿠라는 자신이 빚은 점토 형상이니 자신이 이름을 붙이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둘이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텔루스, 즉 대지의 신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원 재료(점토)의 제공자가 자신이니 자신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

MIDBARR 2023.01.31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 마태복음 5:13~20 오래 전 '감자탕 교회 이야기(양병무 저, 김영사)'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여타의 종교서적과 달리 전문 작가가 아닌 MBA출신, HR파트에서 상당한 인지도가 있는 분이라는 점과 책을 출간한 출판사가 김영사(지금은 '포이에마'에서 출간합니다)라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교회 내부에서 기록한 자화자찬식의 글이거나 혹은 개척해서 대형교회까지 이른 소위 말하는 '교회 성공기'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 이름이 '감자탕 교회'라니 그 등장부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물론 교회의 정식 이름이 '감자탕 교회'는 아닙니다. '광염교회'라는 이름이 버젓이 있었지만 감자탕 집 3층, 5층에 세들어 있는 교회의 간..

MIDBARR 2023.01.27

벼랑 끝

- 마태복음 5:1~12 삶이란 참 위태해서, 때때로 자신의 발끝이 벼랑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음을 확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우리 삶에서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지만 삶이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를 날선 바람이 귀를 때리는 벼랑의 가장자리에 서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종종 '우물'이라는 은유로 이런 삶의 정황을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깊은 우물 속에 놓인 사람은 작은 동그라미의 하늘 위로 찰나같이 지나는 한줌의 태양을 그리워하며 살아갑니다. 동그라미 속 하늘은 그가 가진 세계의 전부입니다. 그 가장자리를 따라 해가 뜨고 계절이 지나갑니다. 대단히 거창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사람은 자신만의 동그란 하늘밖에는 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보여..

MIDBARR 2023.01.26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 마태복음 3:1~12 기원전 490년, 아테네군이 페르시아의 침략을 막아내고 기적적으로 승리한 후 필리피데스 라는 한 병사는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40킬로미터의 거리를 쉼 없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승전보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승전의 소식을,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숨가쁘게 40여 킬로미터를 달려온 뒤, 사람들에게 승리의 소식을 알린 뒤 필리피데스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 안타까운 죽음을 기념해서 마라톤 경주가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필리피데스는 마라톤 평원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외치면서 달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승리의 소식이 필요한 것은 비단 아테네 도시의 사람들만은 아니었기에 마을이..

MIDBARR 2023.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