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 2

단팥 인생 이야기, 앙(あん)

벗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오후, 도라야끼를 굽는 작은 가게에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기웃거린다. 가게 문밖에 붙여 둔 구인 광고를 가리키며 80세가 넘은 노인이지만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겠느냐며 묻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600엔의 시급조차 절반이면 충분하다고 사정하는 할머니를 가게 주인은 노인이 감당하기엔 '고된 일'이라며 어렵사리 돌려 세운다. 그냥 하나 가져가라고 할머니 손에 들려 준 도라야끼 하나가 결국 다시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 된다. 영화는 성급한 생략없이, 마치 계단을 하나씩 짚어가며 오르듯 시간을 기록해 간다. 숨겨진 장인의 손에서 빚어지는 감동의 '맛'과 젊은 사장의 패기와 열정으로 뭔가 '아름다운' 결말로 흐르거나, 주인공의 애틋한 사연이 슬쩍 내비치며 손에 닿을 수 ..

REVIEW/MOVIE 2015.12.23

엘카페(El Cafe) & 로스터리

마음 먹고 엘카페를 찾아간 날이 하필이면 이사를 위해 메인으로 사용하던 에스프레소 머신 '헥사곤'을 들어내던 날이었다. 국내 기술로 제작된 최초의 상용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다니는 이 머신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엘카페를 방문한 마음 중 절반은 되었기 때문에, 카페 입구에 비닐포장되어 조심스럽게 놓여 있는 헥사곤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엘카페는 그리 넓지 않았다. 넓지 않은 매장에 주방 겸 서비스 테스크는 말도 안 되게 넓었다. 한국에서 스페셜티 커피로 나름 유명세를 가진 카페들의 내부 구조가 이와 비슷하다. 압도적으로 매장 크기가 큰 경우(광화문의 테라로사 처럼)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스텀프타운이나 인텔리젠시아의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체감으로 느껴졌다. 매장의 테이블 수가 생각..

REVIEW/COFFEE 201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