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연애시대

mimnesko 2011. 5. 4. 19:03

드라마를 '통속'이라고 쉽게 말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각오된 스토리와 연출이 있어야 한다.
상식이 아닌 시청률로만 측정되는 작가의 비범한(?) 능력과 영상은 잘 모르지만 공부는 잘 했던, 회사원 수준의 연출자가 낮은 개런티의 그러나 노련한 스텝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부조화가 바로 '통속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늘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은 일반적인 입사시험을 통과한 방송국 PD들이 '어떻게'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가, 였다.
물론 그 중에는 영화나 영상을 전공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고, 또 그런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니 PD가 되기 위해 고시 수준의 시험도 마다하지 않았을 거라는 희박한 기대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절반은 미스테리하다.

최근 몇몇 드라마에서 스스로 자아성찰을 하듯 '쪽 대본'과 '초 단위 편집', 심지어 방송중인 드라마가 3개로 나뉘어져 송출되는
서커스에 가까운 제작환경을 고려해 볼 때, 아무리 조연출로 잔뼈가 굵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드라마'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일례로 얼마전 시즌 중에 연출자가 바뀌었던 SBS드라마 "싸인(sign)"의 경우도 그렇다. '라이터를 켜라', '주유소 습격사건2'등 영화판에서 각본과 연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장항준 감독이 도저히 드라마 제작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뻗어버린 것이다.
영화감독도 못 하는 일을 방송국 PD는 할 수 있다고 해야 하는 건지.
영화감독이라면 안 하는 일들을 방송국 PD가 겁 없이 나서서 한다고 해야할 지...




그 와중에도 내 기억에 강하게 남은 드라마는 단연 '연애시대'.
감미로운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지나치게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그리고 '지나치게'의 의구심은 메인 타이틀을 보는 순간 바로 해소되었다. 연출이 한지승. 비록 기억이 얼얼할 정도로 '한 방' 터진 작품은 없었지만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의 영화감독.
'고스트 맘마'로 화려하게(?) 입봉해서 '하루'와 '찜'이라는 소품으로 나름 인지도를 가진 감독이다.

그래서일까? 큰 기대 없이 1, 2회를 보는 동안, 이건 '통속의' 드라마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컷과 컷을 건너뛰는 솜씨나 화면에 스토리를 배치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밥 대신 '도넛'을 주식으로 먹어도, 강남 교보에서 자전거를 탔더니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해도, 그런데 사는 곳은 '분당'이라고 박박 우겨도 이 드라마는 왠지 모를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은 연출자의 힘이겠고 원작자였던 '노자와 히사시'와 원작을 훌륭하게 각색해 낸 박연선(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각본)의 힘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영화를 전공한 현직 영화감독인 연출자와 일본에서 이미 검증된 드라마 작가, 그리고 영화 스트립트를 다룰 줄 아는 작가.
여기에 노영심의 넘치지 않는 음악, 감우성과 손예진의 연기, 탄탄한 조연들의 빛나는 활약.

이렇게 적고 보니 이 드라마가 왜 '지나치게' 웰메이드였는지 쉽게 짐작이 된다. 즉 방송국 PD들의 어설픈 손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주제작(이 드라마는 엘로우TV에서 외주제작했다)으로 절반을 찍어놓고 시작했다는 점도 시청률에 크게 요동치지 않고 방점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와 견줄 수 있는 정반대의 웰메이드는, 즉 방송국 PD가 연출을 하고 우리가 익히 아는 방송국 작가가 대본을 날렸던 작품으론,
노희경의 감성충만 드라마였던 '그들이 사는 세상' 정도?

연애시대에서는 깨알 같은 명장면들과 오랫동안 귓속을 멤돌던 대사들이 유독 많았는데,
아직도 가슴 한 구석을 뭉클하게 하던 대사는 마지막회에서 은호의 아버지(김갑수 분)가 상담방송 중에 느닷없이 춘천 사는 K양, 아니 자신의 딸 은호에게 진심을 담아서 한 말.

 "은호야,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네가 행복해져야 이 세상도 행복해 진단다. 하나님한테는 내가 같이 용서를 빌어주마. ...행복해져라 은호야."


이런 드라마를 또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있을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