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슈퍼배드 (Despicable me, 2010)

mimnesko 2015. 8. 15. 12:59

최근에 미니언즈(Minions)의 열풍에 일루미네이션의 원 시리즈(이자 최초의 에니메이션이었고, 그나마 흥행에 선전을 해서 이런 스핀오프마저 만들게 해주었던)였던 '슈퍼배드'가 자연스럽게 조명을 받고 있다. 2010년과 2013년 나란히 미국의 독립기념일(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추석특집)에 개봉했던 슈퍼배드는 원래 카피라이트였던 "Super Bad, Super Dad, Despicable me"에서 'Super Bad'만 홀랑 따온 건데, 잘 알려져 있듯 영화의 원제는 Despicable me(악랄한 나, 정도의 의미?)이다.

 

 

슈퍼배드는 20세기 폭스사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던 크리스 멜리단드리가 2007년 독립해서 설립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첫 작품이었다. 피에르 꼬팽과 크리스 리노드가 만들어 낸 독특한 캐릭터인 '미니언즈'는 자칫 뻔할 수 있었던 가족영화를 '쿨'하게 만들어줬고, 이후 속편에서 비중을 더욱 넓혀가더니 끝내는 자신들의 이름만으로 멋진 스핀오프를 만들어냈다.

 

 

 

 

슈퍼 배드인 악당 그루(의 목소리는 오피스의 '스티브 카렐'이 맡았다. 코미디 연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했던 그가 최근 영화 '폭스캐처'에서 괴팍한 듀퐁의 후계자로 등장했을 때, 정말 그 놀라운 연기변신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 놓을 세 아이를 만나게 된다.

 

악당의 이면에는 서툴지만 마음이 여린 아이가 있기 마련이고, 지나친 보상과 기대, 거절감, 낮은 자존감 등 이런 저런 상처로 뒤범벅된 성장기를 거쳐 극단적인 프로이드적 인지부조화로 인해 결국 '직업적 악당'이 되어 누군가에게 신나게 되갚음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이르게 된다는 선명하고도 결연한 논리구조를 가진 이 영화는, 악당도 '대출'을 받아야 악당질을 할 수 있다는 현실감과 '미니언즈'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만들어냄으로써 진부하고 상투적인 주제를 슬쩍 비켜가는 영리함도 가지고 있다.

 

 

 

정수기에서 물이 내려가는 소리를 흉내내며 즐거워 하기도 하고 상황파악 못하고 엉뚱한 짓을 한 뒤에 서로 낄낄거리는 미니언즈. 도무지 정체를 알 길이 없는 이 캐릭터에 대해 영화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그냥 '이런 게 있어! 못 봤어?'하는 식이다. 외계에서 나타난 녀석들인지 지구의 고대 생명체였는지, 아니면 마블스럽게 '핵실험'의 부산물인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식으로 말하자면 어느날 난데없이 등장한 'TV피플'이고 '푸우' '푸우'소리를 내며 빛이 나는 번데기를 만들던 작은 생명체들일 것이다. 더 신기한 것은 주인공 그루가 이 '바나나' 비스무리하게 생긴 미니언즈를 구별할 줄 알고 심지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영화관객이 찰나의 순간에 헤어스타일이나 두상의 크기, 눈의 갯수로 미니언즈의 이름을 알아낸다는 것은 요령부득의 일임으로 그루가 불러주는 이름을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다. 악당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니 한심한 일이다.

 

 

 

 

그루는 악당답게 '달을 훔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고, 더욱 더 야심차게 '은행대출'을 받아 이 거사를 치룰 것임을 찬란하게 빛나는 달 앞에서 밝힌다. 이 반물리적인 테마는 심지어 물리적인 결과와 예측가능한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파도가 멈추고(조수간만의 차가 달의 인력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이니까), 늑대인간이 인간으로 환속된다(역시 상식이다), 손오공과 손오반은 더 이상 거대 고릴라가 될 수 없고, 달과 관련된 온갖 종류의 비즈니스는 파산의 위기 앞에 놓인다. 정말이지 악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몇 천배는 더 놀라운 '압축광선'에 대해선 이렇다할 만한 경외심조차 없다. 지구의 1/6만한 크기의 행성을 손바닥만하게 줄이면서 '질량보존의 법칙'을 비웃듯 그 질량조차 손바닥만하게 줄여버린 이 세기의 발명품은 별다른 주목조차 받지 못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놀라운 에너지 광선을 만들어낸 일급비밀 연구소가 '동아시아'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곳이다. 집채만한 코끼리를 피규어로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기술력을 보유한 동아시아의 나라는 도대체 어디일까? 슈퍼 배드의 두 감독은 이런 놀라운 기술을 만들기 위해선 상명하복의 엄격한 명령체계와 강한 군사력을 국가의 우선순위로 두는 독재국가 정도가 필요하다고 상상한 듯 하다.

 

 

중국 강시 모자와 아무리봐도 인민복 같은 군복차림의 비밀연구원들은, 그러나 놀라운 기술력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로 무방비한 보안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USB메모리 하나로 국가 기밀을 훌훌 날려보내거나 잦은 해킹의 피해로 국민의 개인정보를 공공정보화 하는 극동 아시아의 어떤 나라와 흡사하다 할 수 있다. 덕분에 악당들은 별 어려움 없이 핵심기술의 요체를 쓱싹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럼으로써 달의 운명과 지구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고 만다.

 

사족 하나, 주인공이며 동시에 악당인 그루에게 낮은 자존감을 선사하는 트레이닝웨어 차림의 신세대 악당은 아무리 봐도 개그맨 누구를 쏙 빼닮았다. 머리스타일이며 하는 짓이며, 누구나 보면 '어?!~'할 정도로 흡사하다.

 

 

 

 

다시 미니언즈.

이 '특별한 존재'들은 못하는 일이 없다. 무시무시한 무기제작부터 공공서비스 해킹까지. 결국 미니언즈의 도움으로 공문서를 위조하여 신분 세탁(잘 하는 짓이다..)에 성공한 그루는 악당 주제에 세 명의 아이들을 입양하게 된다. 그 구구절절한 사연은 영화로 직접 확인하는 편이 나을 듯 해서 생략.

 

 

 

그리고 악당 주제에 핑크색 우주복을 갖게 된 그루.

흰옷을 색깔 옷과 함께 세탁하면 예기치못한 불상사를 피할 수 없다는 점과 '우주복' 정도는 가급적 드라이크리닝을 맡기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간결한 교훈을 준다. 마치 악당옷에 분홍색 물이 들어가 듯, 악당의 일상에 침습한 아이들의 영향력은 예상한 대로 슈퍼 배드를 슈퍼 대드로 만들어 간다. 손가락 인형 동화책을 읽어주던 악당 그루의 모습은 프로이드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성인 남성에게서 발현되며 무의식의 영역 깊은 곳에 침잠되어 있던 무언가가 '악당으로서'의 슈퍼에고를 어떻게 비집고 나오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영화는 컬러 레이저 복사기로 자기 엉덩이 사진이나 실컷 출력하던 미니언즈의 뜻밖의 발견으로 최악의 사태를 모면하게 되고, 지구는 마침내 평화를 되찾는다. .....잠깐, 악당의 목표는 그게 아닌데? 스스로를 '비열한' 녀석으로 말하던 지구최강의 악당이 결국 사태를 이런 식으로 수습하여 창과 방패를 녹여 쟁기와 보습을 만드는 천국의 그것처럼 악의 화신 '미니언즈'가 최강의 악당무기 제조시스템으로 전혀 다른 불법제조물을 대량생산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달과 함께 되찾은 지구의 평화.

미처 참석하지 못한 학예회가 E.T의 한 장면으로 거듭나는 마지막 장면은 감독의 오마주였을까? 한컷씩 정성을 들여 만들어야 하는 에니메이션의 특성 상, 영화는 24프레임의 한 프레임 한 프레임마다 낭비없는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픽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고 일본의 에미마와도 사뭇 다르지만, 20세기 폭스사를 통한 진중한 에니메이션을 선보여왔던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만만치 않은 내공을 펼쳐 보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럼 도대체 슈퍼배드 2는 무슨 내용일까?

세 아이의 아빠, 숯총각 아버지의 삶의 애환과 아픔, 그리고 사랑을 다룬 로맨스물이 되는 걸까? 한층 강해진 매력의 미니언즈가 돋보였던 슈퍼배드2의 리뷰는 다음 포스팅에.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