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MOVIE

[HBO] True Detective

mimnesko 2015. 7. 29. 03:06

 

 

 

영화 '제인 에어'는 아무런 기대 없이 봤다가 깜짝 놀랐던 영화였다. 이미 잘 알려진 텍스트를 영상으로 옮기는 일은 생각보나 꽤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1990년대 초반의 일이지만,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을 맡았던 '후크'를 보았을 때, 나는 영화화, 라는 단어가 가진 광범위한 폭력의 실체를 알알이 경험했다. "세상에 40살 먹은 피터팬이라니!!"

망할 놈의 스필버그를 외치며 충무로 대한극장을 박차고 나왔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이나 '위대한 개츠비', '반지의 제왕'이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등의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것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좁쌀만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마다의 상상력이 점령한 공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획일화 한다는 것은 대단히 용감한 시도이긴 하지만 필수불가결하게 광범위한 반대세력을 만들어 낼 수밖엔 없기 때문이다.

 

영화 '제인 에어'는 내가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그 '제인 에어'와는 생판 달랐다. 이란성 쌍둥이 같았다. 같은 태에서 이처럼 이질적인 상상력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래서 감독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 캐리 후쿠나가(Cary Fukunaga).

그가 상상한 제인 에어는 나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설득력이 있었다. 마치 내가 생각한 건 모두다 엉터리였구나, 하는 반성마저 갖게 했다. 그는 원작의 불모함을 부감으로 꽉 채운 먼지 같은 캐릭터 한 장면으로 일축해 버렸다. 그 황망함과 고립됨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꽤 감탄하면서 즐겁게 영화를 보았다.

 

기대해 비해 작품이 적었던 감독의 이름을 이번엔 HBO의 드라마에서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첫 장면을 보자마자 '이거 혹시?' 하면서 크레딧을 확인했더니 역시 빙고. 아무런 설명없이 멀리서 바라보는 장면 하나 만으로 상황을 요약하는 비범함은 여전했다. 트윈 픽스의 첫 화면과 전화 씬을 보다가 '머홀랜드 드라이브'가 떠오르고, 다시 데이빗 린치가 떠오르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확실히 이 감독은 이 방면으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주연 배우가 매튜 매커너히(Matthew McConaughey)와 우디 해럴슨(Woody Harrelson)이다. 한 편의 영화에서 함께 캐스팅되기 쉽지 않은 배우들인데 8부작 드라마로 두 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다니 꽤 멋지지 않은가!

 

매튜 매커너히는 오래 전 '타임 투 킬'에서의 멋진 변호사(느끼한 백인 아저씨)로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그를 보았을 땐 정말 눈을 씻고 다시 볼 정도였다. 누구냐, 너? 통통하고 댄디하던 사람은 온데 간데 없고 삐쩍 말라 비틀어진 마약 중독자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인터스텔라에서 다시 한 번 그를 확인하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뭔가 삶에 큰 산이라도 넘어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디 해럴슨 역시 꽤 멋진 여러 영화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에 남는 건 올리버 스톤의 '킬러'와 '킹핀' 같은 영화들 뿐이다. 아주 멍청하거나 아니면 심하게 머저리거나였다. 최근 헝거게임에서도 '아, 우디 해럴슨인가? 저거?' 하는 정도의 감흥 외에는 없었다. 

 

그런데 두 배우가 이 드라마에선 마치 작심한 듯 진짜 '형사'가 되어 버렸다.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알고 적당히 놀 줄도 아는 시골 토박이 형상 마티 하트(우디 해럴슨), 마약부서 형사로 언더커버로 잠입하여 산전수전 다 겪는 바람에 사람과의 친화력을 상실해 버린 콜 러스트(매튜 맥커너히). 두 형사의 독특한 화학적 결합이 내내 보는 사람의 심장을 꼭 쥐어 잡는다.

 

 

 

 

인상적인 타이틀 화면과 멋진 음악. 그리고 감독의 절제된 연출력은 다른 미국 드라마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몰입감을 준다. 덕분에 감독은 66회 에미상에서 감독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물론 내가 아끼는 감독 리스트에도 당당히 올라갔다.

데이빗 핀처와 베넷 밀러보다 조금 아래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

 

결국 드라마 이야기인 것 같지만 감독 이야기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