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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브핫의 딸들

mimnesko 2023. 5. 12. 11:43
민수기 27:1-11

1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들에게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2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이르되
3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4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5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
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7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8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딸에게 돌릴 것이요
9 딸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0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1 그의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받게 할지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규례가 되게 할지니라

 

주가조작에 대한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겐 상상조차 어려운 단위의 돈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제멋대로 이용되고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이 그저 열 배 스무 배의 이익을 내 준다는 말에 퇴직금까지 선정산해서 맡겼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어리석다'라는 말로 일축하기에는 뭔가 여운이 남습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시장이 이렇게 왜곡되고 또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수천 명의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있어도 관리 당국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시장이 주도하고 시장이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 타령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기관 투자'라는 말부터가 틀린 것이 아닌가? 왜 시장이 주도하는 시장에 기관이 '묶여진 돈'을 가지고 참여하는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뭅니다. 

 

월급만으로는 목돈을 만들기 어려운 팍팍한 세상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몇년 전 거액의 자금을 유용하고 또 은닉했던 정부의 한 사람이 했던 답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자식들에게 남들과 다른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의 말은 이 사회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기계적인 평등, 자유가 얼마나 무의미한 단어에 불과한 것인지를 또한 여실히 증명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내 자녀가 다른 사람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에서 출발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 공직을 맡은 사람의 답변이니, 개인의 이익추구가 전쟁처럼 벌어지는 일반 사회에서야 두말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아무런 '기준'도 '방어선'도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걸까요? '천민 자본주의'의 민낯을 볼 때마다, 기회가 없었을 뿐 얼마든지 날것일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볼 때마다, 이 전쟁의 끝이 해피엔딩이 아님을 짐작하게 됩니다. 

 


 

구약의 인물들 중 '슬로브핫'만큼 유명한 사람이 있을까요? 마치 러시아인의 이름 같기도 한 슬로브핫은 므낫세 족속으로 그의 생애에는 아무런 유명세를 갖지 못했지만, 아들 없이 죽었던 삶(?)으로 오히려 사후에 큰 유명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의 다섯 명의 딸들, 즉 밀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덕분입니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자신들에게 달라는 것이지요. 

 

이들의 요구는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전혀 당연하지가 않았습니다. 어린이와 여성은 '인구'에도 포함되지 않던 시절입니다. 가문의 한 사람으로 광야에서 전사했다면 그리고 그에게 유산을 상속할 또 다른 '남자'가 없다면 그 재상은 당연히 족속 전체의 재산으로 귀속되어 가문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던 시절입니다. 앞 세대가 그렇게 살아왔고, 수없이 많은 딸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아들 없이 생애를 마감한 사람이 어디 '슬로브핫' 한 사람뿐이었을까요. 

 

그런데 밀라와 노아, 호글라와 밀가, 디르사는 다른 딸들의 당연함을 '당연함'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다른 사람과 다른 '출발선'을 갖겠다는 욕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들의 요구에 대답하셨습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이스라엘의 오랜 관습보다 다섯 명 딸들의 말이 '옳다'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더 나아가 하나님은 이러한 '상속의 원칙'을 '판결의 규례'가 되게끔 하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기준'과 '방어선'을 제시하셨던 것입니다. 남들보다 앞선 출발점을 위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설 수라도 있게끔 하는 것이 공동체의 사명과 목적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해해서 안 되는 것은 슬로브핫의 딸들의 '맹렬한 요구'가 하나님의 대답을 얻어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광야 공동체가 성장함에 따라 이전에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주제에 대해 새로운 기준과 방어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하나님께서 '공식화'하셨던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 밀라와 노아, 호글라와 밀가, 디르사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숙고해야할 것은, 어떤 당연한 것도 결코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그 제도나 원칙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논의하고 항변하며 개선을 요청하고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행동이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합의 중에 '무결점'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완벽함'이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도와 관습이 절대화 된다면 그것조차 '우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이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기에, 교회는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사회를 향해 날마다 새로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