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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mimnesko 2023. 8. 21. 10:43
- 예레미야 23:9-22

9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 때문이라
10 이 땅에 간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12 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어두운 가운데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고 그들이 밀어냄을 당하여 그 길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을 벌하는 해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 우매함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14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19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20 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21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미니언즈로 등장으로 잘 알려진 영화 '슈퍼 배드'의 원제는 "Despicable Me"입니다. 충실히 번역해보자면 '비열한 혹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사악한 나' 정도입니다. 오히려 '슈퍼 배드'라는 번역 아닌 의역이 귀염귀염한 영화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상 둘도 있어선 안 될 악당의 이야기입니다. 노란 치즈과자 같은 미니언즈 역시 '똘마니들' 정도의 어감이지요. 

 

이 유쾌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그루'는 세계 최고의 악당, 세계 최고의 비열하고 사악한 인간이 되기 위해 불철주야 수고와 노력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떤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주위 경쟁자들(역시 악당입니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노력에 불타오릅니다. 그루의 엉뚱한 실수나 미니언즈들의 세상 귀여운 표정에 현혹되기 쉬우나 어디까지나 이 영화는 '악당 만들기'가 주제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주제를 아우르는 한 문장이 마침내 완성됩니다. 

"악은 성실하다."

 


 

실로 악은 성실합니다. 저는 어느 영화(애니메이션이든 실사든)에서도 게으른 악당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늘 최첨단의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며, 자신의 목표와 목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반면 착한 편은 대부분 '천부적 재능'으로 인해 태생적으로 게으른 편입니다. 도무지 연구하는 법이 없습니다. 패배를 당하더라도 스스로 반성하거나 분노하거나 뉘우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착한 편'이 승리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방심' 때문입니다. 최후의 방심. 대부분의 악인들은, 그냥 내려치면 될 것을 필요없는 대사 한 줄을 외우다 낭패를 당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필요없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쓸데 없이 착한 편을 '각성'시켜줍니다. 도무지 악인 답지 않은 도덕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치 산의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그런데 여기가 무슨 산이더라?'하면서 공상에 빠지다가 실패하는 것과 같은 어이없음이 드러납니다. 어쨌든 '착한 편'의 승리로 끝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미 수백 번은 이겼을 것 같은 악당이 '방심'해서 지는 스토리로 훈훈하게 마무리가 됩니다. 악인의 대사 "다음에 두고 보자"는 그래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현실의 악은 '성실'하며 도무지 '방심'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은 선지자(착한 편)인 줄 알았던 악인(나쁜 편)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렘 23장 21절)

 

 

문제는 그들의 겉모습(신분)만 봐서는 그가 착한 편인지 나쁜 편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헛된 것을 가르치'지만 분별할 수 없는 대중에게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그들의 묵시가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17절)"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그들의 달음질하는 '성실함'에 매료되어 그들의 악함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더욱 큰 어려움은 예언자 자신들조차 '자기 마음'에서 나온 소리를 '여호와의 소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선할 뿐 아니라 심지어 뛰어난 예언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판단의 근거가 '하나님'이 아니라 열광하는 '대중'이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열광'을 마치 하나님의 보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 명, 만 명의 교세가 세워지겠는가?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모든 불법이 가려지겠는가?

 

여러분의 교회와 목회자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는 목회자들의 설교를 대할 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도들을 나무라는 설교라고 꼭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귀에 듣기 좋은 설교라고 해서 꼭 거짓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새벽예배 한 번 안 빠지는 성실함이 그들의 '선함'을 증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유일한 구별점은 과연 그 목회자(설교자)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을 전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참된 예언자, 즉 선한 목회자의 모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악한 행위와 행동(그것은 결코 대중의 도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대를 도도히 흐르는 '시대정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을 보고도 교회라는 철옹성을 짓고 그 안에 안주하는 목회자라면 그는 불행히도 대중의 박수에 귀가 멀어버린 거짓 예언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개인의 사욕을 채우고, 교회의 이름으로 자신의 노후를 설계하며, 소수의 인권을 말살하고, 사람답게 살아갈 작은 권리조차 짓밟는데 앞장 선다면 그 성실함은 '악'의 성실함이 됩니다. 성경의 지적처럼 백성들의 악한 길과 행위를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돌이키게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그 목회자의 열정과 노력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악당(Despicable)의 성실함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그 목회자가 직장처럼 다니고 있는 교회의 성도라면 스스로 '똘마니'를 자처하는 셈입니다. 어떤 좋은 형용사를 덧붙여도 그것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렘 23장 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