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BARR

모두 함께, 모두 같이

mimnesko 2023. 1. 13. 06:00

- 민 7:12~89

 

 

교회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경우, 나이 지긋하신 권사님의 지시에 따라 여러 집사님들이 일사불란하게 많은 교인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보통 권사회 또는 여전도회, 또는 공동체(순, 구역)에서 순번을 정해 식사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미묘한(?) 신경전이 있을 때도 있다고 합니다. 가령 지난 주 맡은 부서가 맛있는 반찬을 준비했다면, 이번 주 순서를 맡은 부서에서는 무조건 지난 주보다 맛있거나 비싼 재료가 올라가야 한다, 라는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웃고 넘길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이것을 중재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역자들의 이야기를 가끔씩 듣게 됩니다. 

성도들과 나눌 한 끼의 점심 식사지만 동시에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이라는 점에서 더 나은 것을 드리겠다는 성도들의 의지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설령 그 안에 어떤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식사가 모든 성도들에게 공여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선배 목사님은 한 가지 획기적인 시도를 하셨습니다. 교회 식사의 메뉴를 딱 하나로 정하신 겁니다. 밥과 소고기무국, 그리고 김치와 김입니다. 재료 역시 개인이 구매하지 않습니다. 메뉴가 단일한 만큼 양질의 식사를 준비하자는 마음에서 쇠고기와 쌀, 김은 가장 좋은 식재료를 엄선하여 대량으로 주문합니다. 김장은 교회 전체가 1년 치를 담급니다. 레시피도 정해져 있습니다. 국에 넣을 재료와 양, 끓이는 시간까지 주방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누가 준비하든 늘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만약 정 다른 메뉴가 먹고 싶다면 본인이 교회 근처 식당을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선배님의 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점심식사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성도님들도 교회의 점심메뉴가 가진 어떤 '가치'에 대해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물은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그 순간조차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또 다른 사람보다 한 계단 높이 서고자 하는 본연의 욕망은 쉽게 조절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물을 눈여겨 보게 됩니다. 12절부터 83절까지 열두 지파가 드리는 헌물의 목록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내용, 즉 헌물의 내용이 완전히 같다는 점입니다. 

 

1. 은 쟁반 하나(백삼십 세겔)

2. 은 바리 하나(칠십 세겔)

3. 은 쟁반과 은 바리에 채운 기름 섞은 고운 가루(소제물)

4. 금 그릇 하나(열 세겔, 향을 채움)

5. 수송아지 한 마리, 숫양 한 마리,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번제물)

6. 숫염소 한 마리(속죄제물)

7. 소 두 마리, 숫양 다섯 마리, 숫염소 다섯 마리, 일 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화목제물)

 

각 지파는 위의 일곱 가지 항목의 헌물을 '모두 함께, 모두 같이' 드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연설물에서 '이하 동문'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선배님 교회의 점심 식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어느 지파든 그런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다른 지파보다 양 한 마리라도 더 드리고 싶고, 금 그릇 하나라도 자랑스럽게 더 내어놓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요? 

 

그러나 오늘 민수기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은 '모두 함께, 모두 같이'의 원칙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드러내지 않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향하는 마음의 자세를 돌아보게 합니다. 성전에서 드린 과부의 두 렙돈을 '가장 많이 드린 헌물'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헌물의 양을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많이 드렸다고 더 많이 기뻐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관심은 늘 우리 마음의 방향에 있습니다. 모두 함께, 모두 같이,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공동체를 꿈꾸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우리 마음의 자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