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mimnesko 2010. 4. 20. 17:53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 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
무심하게 건네는 인사만큼 사람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일이 없단 생각이 든다. 오래전 신경숙의 '깊은 슬픔'을 읽었을 때, 새가 그녀에게 화분을 선물하고 '무심하게 키워 봐'라고 했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애써 화분까지 채워 그녀가 없는 집앞까지 찾아와 두고 간 화분을 무심하게 키워 보라던 새의 마음은 어디까지가 진심이었을까.

나희덕 시인의 시를 읽다가 문득 새의 그 말이 기억났다. '우리 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그 지인의 마음은 또 어디까지가 진심이었을까. 결국 약속을 지켜 내려간 길에 시인을 반긴 것은 '조등 하나'
우리는 늘 너무 늦게 누군가의 마음에 도착하는 게 아닐런지. 너무 많이 그 마음의 크기를 측정하고, 아닌 척 하면서도 사회의 여러 기준으로 가늠하고 또 가늠하면서도 그것이 어떤 '행복'을 보장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늘 누군가의 호의에 너무 늦게 대답하고 있지 않을까. 결국 그 호의의 자리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기다리는 건 임자 없는 목련 그늘뿐이지 않을까. 불현듯 지나가 버린 봄을 보며, 난 아직 2010년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