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작은 결심

mimnesko 2011. 10. 5. 01:45


사람이 하는 결심 중에 '작은 것'이 있을까?
어떤 결정이든 마음 속을 몇번이나 메아리 쳐서 나온 것임을 알기에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거대한 세상에서 뭔가 '큰 뜻'이 되지 못한 자격지심이 결심조차 작게 만드는 구나, 생각하니 쓴 웃음이 난다.
그래도 역시 작은 결심이다. 지난 1년간 지리하게 이어져 오던 프로젝트 하나를 마음속으로 내려놓기로 했다. 손해는 막심하다. 심적 손해와 더불어 상상하기 싫을 정도의 물적 손해도 입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반대로 말하는게 맞겠다. 물적 손해도 입었지만, 당분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내상을 입었다.

그래서 작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늘 어느 갈등 구조에 서게 되면 쉽게 내려 놓는 성격이었다. 내가 약간의 손해를 보는 것이 모두에게 평화를 주는 일이라면 그까짓 것 하면서도 꽤 오랫동안 그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갈등 속에서는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꽤 지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내상을 입을 바엔 차라리 손해를 보고 말겠다, 라는 미련함이 있었다. 사실 돌아보면 조급함과 그에 이어지는 엉뚱한 호기였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행동들이다.

그래서 이번엔 좀 길게 가 보자 결심했다. 내가 먼저 갈등 구조에서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이미 손해는 막심하지만, 내적인 부상을 제공한 원인제공자에게 평화를 주는 일은 하지 않겠다, 결심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소위 '신앙공동체'라는 이름 안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용서의 폭이 더욱 좁아졌는지도 모른다. 이런 건 도무지 용서가 안 된다. 뭔가 대단한 신앙의 조력자가 되어줄 것 처럼 자신의 속을 내보이다가 어느 순간 작은 이익 앞에서 눈이 벌겋게 되어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그저 안타까워해서만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보낸 단문메시지에 '아쉽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아쉽다는 말로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른다. 가릴 건 가려야 하고 따질 건 따져야 한다. 설령 상대가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형국이어도 결국 시간에서 지지 않으면 된다는 경험이 나에겐 있다.

꼭 이겨내야겠다, 라는 것은 내가 입은 손해에 대한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다시는 이런 손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작은 결심'이며, 이번을 손해의 마지막이 아니라 결심의 처음으로 삼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천천히 가보기로 했다. 사람의 나쁜 마음들이야 익히 학습된 바고, 또 포지티브보단 네거티브 지향적인 여론의 분위기에도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결정은 내가 하는 것. 난 시간을 이겨내 보기로 결심했다. 세상을 뒤흔들 정도의 결심은 아니지만, 분명 나로서는 바위가 옮겨진 정도의 변화이다.

시간을 하늘에 촘촘히 새기는 새벽이다.
그리고 다시 견디어 가는 또 하루의 시작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