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일곱 개의 초로 밝히는 테네브레(Tenebrae)

mimnesko 2024. 2. 27. 09:47

 

로완 윌리엄스는 자신의 저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서 “고난주간과 부활절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지적처럼, 여타의 어떤 절기보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생각하는 일주일이야말로 현재의 기독교를 세운 토대이며 정수(精髓)입니다.

한국 교회는 고난주간 일주일 동안 특별새벽기도회로 모이고, 성금요일(God’s Friday)엔 십자가 위에서 남긴 예수님의 일곱 말씀을 묵상하며 ‘가상칠언’의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활절에는 생명의 상징을 담은 ‘달걀’을 성도와 이웃이 함께 나누며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축하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기념했을까요?


예수님의 기억이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고난주간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었을 것입니다. 호산나를 외치던 유대인들의 외침, 예수님의 살갗을 파고들던 가죽 채찍의 소리가 일주일 내내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기억은 흩어지고 옅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2~3세기의 교회는 특별한 의식들을 통해 이 성스러운 일주일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중 성금요일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언은 잘 알려진 것처럼 4세기 말의 저술 ‘에제리아 여행기’(Itinerarium Egeriae)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4세기 말 예루살렘에서 거행된 성금요일 전례는 크게 십자가 경배 예식과 말씀 전례를 중심으로 한 오전과 오후의 예식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세워져 있는 골고타 후면에 미리 마련된 어좌에 주교님이 앉으시고 그 앞에 상보를 깐 상을 준비하면 부제들이 그 주위에 서 있습니다. 그다음 도금한 은제 상자를 가져오고 그것을 열어 안에 있는 십자가 보목과 명패를 꺼내어 상 위에 놓습니다.

- “에테리야 여행기”(정환국 옮김), 83

 


틀림없이 이 ‘십자가 보목’은 예수님이 달리셨던 바로 그 십자가의 일부였을 것입니다. 그 놀라운 상징을 직접 눈으로 마주하고 입 맞추면서 당시의 성도들은 나뭇결마다 새겨져 있을 주님의 고난을 떠올렸습니다. 이 십자가 경배 예식은 육시부터 9시(오후 12시~3시)까지 거행되는 말씀 전례에서 정점을 맞습니다.

이렇게 육시부터 구시까지 독서를 하고 찬미가를 부르며 주님의 수난에 대한 예언자들의 예언이 복음이나 사도들의 기록으로 완성되었음을 회중들에게 보여줍니다. 이렇게 예언된 것은 다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진 사건은 다 예언되었음을 회중들에게 3시간 동안 묵상하게 합니다.

- “에테리야 여행기”(정환국 옮김), 84

 

 

무려 16세기 전 성도들이 드렸던 성금요일 예배를 살펴보며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가장 깊은 고통과 슬픔이 가득했을 1세기 성도들의 삶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예배와 의식은 예수님의 고통 그리고 놀라운 사랑을 주목하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망의 어둠, 즉 테네브레(Tenebrae)에 가까운 밤이었습니다. 그 어두운 밤에 일곱 개의 촛불을 켜서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던 사람들. 예수님의 일곱 말씀이 낭독될 때마다 하나씩 꺼지며 더 농밀한 어둠을 불러오는 긴장의 예배. 마지막 일곱 번째 초가 빛을 잃는 그 순간, 성도들은 다시 한번 그 어둠(Tenebrae)을 떠올리게 됩니다.

성금요일 예배는 아직 부활의 기쁜 소식을 경험하지 못한 어둠의 예배입니다. 

그러나 곧 이 깊은 어둠에서 생명을 길어 올리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소망하는 납빛의 예배이기도 합니다. 푸르스름한 새벽 너머 부활의 아침이 떠오를 것이기에, 이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기적의 아침을 준비하는 어둠의 예배, 일곱 개의 초로 밝히는 테네브레의 예배가 다시 한번 우리의 시선을 나무 십자가에 고정시켜 줍니다.
텅 빈 십자가 위 공간이야말로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찬양이, 우리의 기도가 닿아야 할 바로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로완 윌리엄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Egeria, 정환국 옮김 “에테리야 여행기”(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