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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원하느냐?

mimnesko 2023. 3. 13. 11:42
마태복음 20:17~34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의 진행자이자 탁월한 인터뷰어였던 '래리 킹'(Larry King)은 '어떻게하면 당신처럼 뛰어난 인터뷰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는 자신의 토크쇼에 출연한 게스트 들에게 종종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대본의 의도를 살짝 벗어난 대답을 얻어내기로 유명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대화 기술은 '대화의 신'이라는 책으로도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기의 기술'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그 중 래리 킹이 여러 화자들을 분석하고 정리한 '대화를 잘 이끌어가는 8가지 습관'은 눈여겨볼 만 합니다. 

 

   1) 익숙한 주제라도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2) '폭 넓은 시야'를 가지고 일상의 다양한 논점과 경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한다.

   3) 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을 설명한다.

   4)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려 하지 않는다.

   5) 호기심이 많아서 좀 더 알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6) 상대에게 공감을 나타내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말할 줄 안다.

   7) 유머 감각이 있어 자신에 대한 농담도 꺼려하지 않는다.

   8) 말하는 데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면 종종 '말만 잘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특히 정치인, 언론인들은 직업적 활동 자체가 '말'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말을 잘 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실'을 전달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닌 것처럼 '아' 다르고 '어' 아른 미묘한 어감을 잘 사용하는 사람들이 뛰어난 결과를 낼 때가 많습니다. 종종 잘못된 인터뷰 하나로 구설에 오르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을 보면 위의 8가지 중에서 몇 가지 항목이 낙제점에 가까운 경우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조금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목회자들 역시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목회자들에게도 대화의 기술은 필수적입니다. 위의 8가지 항목을 반추하여 스스로의 언어 습관을 잘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수반된다면 자신의 부족한 언어습관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슬픔이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들의 '말 실수'는 종종 개인의 실패뿐 아니라 종교 전반에 걸친 과도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든지 '내가 예수'라든지의 황당한 주장만이 실패한 대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목회자들은 훨씬 더 교묘한 '말 장난'을 즐길 때가 더 많습니다. 이러한 실수가 교세나 정치적인 세력의 힘을 입으면 말 그대로 종교에 대한 이해 자체가 무너지는 처참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 특히 개신교계는 이러한 일들을 이미 여러번 겪었고, 그로 인해 개신교가 기울여왔던 전도와 섬김의 숨은 노력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안타까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의 대화 기술은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도 놀랍습니다. 특히 오늘 세베대의 아들들(요한과 야고보입니다)에 대한 인사청탁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과 대화는 오늘 개신교가 가져야할 좋은 자세의 모범이 됩니다. 세베대의 아내이자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흥미롭게도 그 이름은 성경에 드러나지 않습니다)가 예수님께 인사를 합니다. 그 이면의 요구를 눈치 채신 예수님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세베대 아들의 어머니는 이 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매우 직접적이며 간결하게 자신의 요청을 이야기합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우리는 이 요구의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또 남편 세베대가 공동체 내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다가와서 이런 날것의 요구를 대담하게 할 수 있는 위치였음을, 그리고 다른 제자들이 이에 대해 '분히 여겼'지만 딱히 직접적인 대응을 할 수 없는 위치였다는 것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이런 요구를 해도 되는' 위치였다고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이 요구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는 어떤 '권리'를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권리가 충분이 발휘될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셨을 때 그것을 '완곡한 승낙'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화 속에는 세베대의 아들들이 기대했던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권력', '통치', '잔', '구하는 것'들의 통념을 낱낱이 무너뜨립니다. 권력의 자리는 섬김의 자리가 되고, 누림의 자리는 봉사의 자리로 돌변합니다. 낮은 것이 높아지고 높은 것은 오히려 낮아집니다. 말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현실로 체득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삶을 통해 스스로 그것을 보여주고 증명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나의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남들보다 한 계단 더 높은 곳에 있어 만족을 누리는 삶입니까? 남들보다 한 계단 더 아래에 있어 불만이 가득한 삶입니까? 예수님은 세베대의 아들 너머 우리를 향해 "왜 아직도 계단 따위에 머물러 있는 거냐?"라고 묻고 계신 것만 같습니다.